“산사람들, 새 길 개척않고 높이에만 집착”
남선우 새 등산연구소장 ‘8천m 신드롬’ 비판
권오상 기자
» 남선우(55·월간 <마운틴> 발행인)씨
“산의 높이는 등반의 어려움을 얘기하는데 필요하지만 충분하진 않다. 고도(Altitude)보다는 산의 불확실성과 곤란성에 솔직하게 맞서는 태도(Attitude)가 더 중요하다.”
‘8000m 신드롬’이 휘몰아치던 2000년대 초반,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베이스캠프엔 무려 9개의 한국 원정대가 동시에 몰려든 적이 있었다. 높이가 최종 목적이었던 한국 등산문화의 ‘부끄러운’ 단면을 그대로 드러낸 장면이었다. 상업성을 동반한 등정주의를 경계하며, 등산에 내재된 정신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등로(登路)주의’를 외치는 자리가 마련됐다.
14일 서울 명동 로얄호텔에선 한국등산연구소 제2기 출범을 기념해 ‘다시 알피니즘을 본다’는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주제발표에 나선 남선우(55·사진·월간 <마운틴> 발행인)씨는 “장비와 셰르파의 도움 등 각종 편의성을 통해 얻은 등정의 결과나 숫자로 등반성을 평가할 수 없는 것은 열 작품을 쓴 소설가가 한 편의 소설을 쓴 이보다 위대하다고 단정지을 수 없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진정한 등반은 길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는 말처럼 불확실함 속에서 자신의 길(방식)을 찾아 올라야 참된 의미가 있다”며 “6천m급 거벽 등반가들이 8천m급 등정자들보다 저평가되는 것은 극도의 불확실성과 곤란성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유럽과 일본, 미국 등에선 사라진 지 오래된 8천m 신드롬은 한국엔 아직 남아있다. 남씨는 “히말라야 도전이 시작된 1962년부터 89년까지 한국의 국외원정 중 82%가 노멀루트(남이 지나간 길)였으며, 고도도 8천m급이 63%나 됐다”며 1990년대 이후 이런 경향은 더 가속화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산악인 두 명이 14좌에 경쟁적으로 도전하고 있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알피니즘을 ‘산의 불확실성과 맞서서 얻는 깨달음’이라고 정의한 그는 “등정주의가 남의 정상을 오른다면, 등로주의는 자신의 정상을 오른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강조했다.
77년 고상돈씨가 한국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올랐을 때 등반대장을 맡았던 김영도(85) 전 대한산악연맹 회장은 이날 27년 동안 이끌어온 한국등산연구소를 남씨에게 넘겼다. 제2대 소장에 취임한 남씨는 양정고, 중앙대 산악부 출신이며, 82년 국내 최초 히말라야 동계 등정(푸모리)과 88년 에베레스트 단독 등정, 99년 알프스 12개봉 연속 등정 등의 경력을 지녔다.
권오상 기자 ko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