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전 천지를 올랐던 그들은 ...글: 남선우

by 김근생 posted Dec 0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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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에서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7월,
양정중학교(당시 5년제) 산악부 학생들이 백두산을 등정하기 위해 경성역(지금의 서울역)을 출발했다. ‘양정산악부 백두산 탐구등행 연성회’라는 명칭의 이 등산대는 중학생 15명과 인솔교사 2명으로 구성되었다. 경비는 ‘대자연에서 심신단련과 전력증강’이란 명목으로 학교 측에서 일부 보조해 주었고 나머지는 35원씩 걷어 충당했다. 압록 강변 혜산진에 도착한 이들은 국경수비대(사진)에 신고를 하고 당나귀 4필, 중국인 인부 4명을 고용해 도보 여정에 들어갔다.
공비가 출범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국경수비대의 지원을 받으며 포태리, 삼지연의 삼림지대를 걷고 신무성, 무두봉 고원지대를 넘어 5일 만에 드디어 백두산 천지에 다다랐다.
“한발 한발 오르니 눈 아래 천지가 한 눈에 보인다. 마치 청색 잉크를 큰 그릇에 부어놓은 듯한 신비스러운 모양이다. 고대로부터 앙망하던 백두산 천지를 현실로 보니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진 듯 한없이 보고만 있어도 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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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부장 고희성(당시 5학년)은 황홀경에 빠져 있는 대원들을 데리고 천지 호반에 다섯 동의 텐트를 쳤다. ‘구쓰나오시’와 ‘무쪽’이란 별명을 가진 인솔교사들도 감격한 나머지 기념파티를 허락했다. 쏟아지는 별빛, 모닥불 주위에서 저마다의 추억을 쌓아가는 가운데 천지의 밤은 한없이 깊어만 갔다. 저들이 20세기 백두산을 오른 마지막 남녘 청소년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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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ly Mount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