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원정대 '다시! 에베레스트다'

by 관리자 posted Apr 2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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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원정대 '다시! 에베레스트다'
18인의 영웅들… 그들의 에베레스트는 끝나지 않았다

에베레스트 등정 30주년을 맞아 77원정대원들이 다시 에베레스트를 찾는다. 출정을 앞둔 대원들이 1976년 훈련도중 숨진 동료 대원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지난 16일 설악산 사고 현장에 모였다. 조영호기자 voldo@hk.co.kr

‘8848’

전화번호 뒷자리로 이 4개의 번호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의 영광을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에베레스트에 처음으로 태극기를 휘날린 ‘77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77KEEㆍKorea Everest Expedition)’만큼 ‘8848’의 감흥을 크게 가지고 있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77KEE의 등정일기는 장편의 드라마다. 쉽게 뚝딱해서 정상에 오른 게 아니다. 국민들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 산악인들은 수년을 준비해 장도에 올랐고, 거머리와 해충에 시달리며 한 달의 행군 끝에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고소를 배회하는 사신과 사투를 벌인 끝에 마침내 세계의 지붕에 올라섰다.

정상에 오른 이는 고(故) 고상돈(당시 29세) 대원이지만 이는 나머지 18명 대원의 체계적인 지원을 통해 이뤄낸 결과였다. 하지만 사람의 기억은 늘 단편적이다. 언론은 ‘첫 발의 사나이’ 고상돈에 집중했고 사람들은 에베레스트를 고상돈의 이름으로만 떠올렸다.

77KEE 대원 중 누군들 정상에 오르고 싶지 않았을까. 당시 최종 정상 공격을 앞두고 대부분의 대원들은 원정일기에 “나는 더 오르고 싶다”고 꾹꾹 눌러 적고 있다. 어떻게 고생해서 온 에베레스트인데 정상의 꿈을 놓을 수 있었겠는가.

에베레스트 원정 드라마는 1971년 히말라야 로체샤르 원정팀이 네팔에 가서 에베레스트 등정 신청을 하면서 시작됐다. 73년에 네팔 외무성에서 77년 가을에 들어오라는 통보가 왔고 드디어 에베레스트로 가는 물꼬가 터졌다. 대한산악연맹과 창간 20주년을 맞아 도약을 꿈꾸는 한국일보가 의기 투합, 큰일을 저지르기로 했다.

원정 자금을 마련하고 원정대원을 모으느라 바빠졌다. 세계 최고봉을 오른다는 소식에 전국의 난다 긴다 하는 산사나이들이 몰려들었다. 4차에 걸친 모진 훈련을 산악인들은 이를 악물며 견뎌냈다. 세계의 지붕에 서겠다는 꿈 하나 때문이다.

76년 설악산 동계훈련 중 눈사태로 3명의 대원을 잃는 큰 사고가 났지만 에베레스트를 향한 투지는 꺾이지 않았다. 77년 마지막 동계훈련 때 일이다.

77KEE 대원인 대한산악연맹 김병준(59) 감사는 “설악산 사고 1주기 추모행사를 위해 현지에 훈련대원들이 모였다. 연맹이 미리 맞춰 놓은 떡이 오래돼 곰팡이가 슬어있던 것을 모두 나눠 먹고 배탈들이 났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내색을 하지 못하고 끙끙 속으로만 앓았다. 에베레스트로 갈 정예 대원을 뽑을 날이 가까웠기 때문이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까지 직항 노선이 뚫리고 카트만두에서 해발 2,800m인 루크라까지 비행기로 이동해 1주일 정도만 도보로 캐러밴을 하면 베이스캠프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태국 방콕 등을 경유해야 카트만두로 들어갈 수 있었고, 카트만두 인근 람상구에서 베이스캠프까지 380km를 한달 여 걸어야 도착할 수 있었다. ‘주가’라 부르는 거머리떼의 습격에 시달리는 고난의 행군. 그래도 마음은 희열로 터질 것 같았다. 꿈에 그리던 산이 점점 가까워오기 때문이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해서는 한국에서부터 지고 온 100개의 사다리를 이용해 거대한 빙하지대 아이스 폴의 크레바스를 건너가며 본격적인 등정에 나선다.

고독, 고소의 냉혹한 한기에 시달리며 대원들은 조금씩 높이 올라갔다. 그 해 9월 박상열ㆍ 앙 푸르바 1차 공격조의 안타까운 실패를 딛고 마침내 2차 공격조인 고상돈ㆍ 펨파 노르부가 정상에 섰다.

77KEE 박상열 부대장은 “다른 원정대도 계속해서 모임을 가지지만 77원정대만큼 활발하게 지속되는 모임은 없다”고 했다. 에베레스트 첫 등정의 영광과 꼭 그 만큼의 그늘은 사반세기가 넘도록 대원들을 하나로 묶는 세월의 자일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우리의 ‘영원한 대장’ 김영도 대장이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지금껏 모임을 이끌고 있다”고 했다.

세계의 정상을 처음 밟은 한국의 산악 영웅들이 지난 감격을 되새기며 이제 31일이면 다시 에베레스트를 향해 날아간다. 그들의 영혼 한 조각 미련없이 저당잡힌 에베레스트 품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