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양정산악회 에베레스트 등정 10일간의 기록

by 김근생 posted May 1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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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 (C3~C4)
아침 일찍 물을 끓이고 부산하다. C3의 공간이 협소하여 소변을 보러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설벽을 깎아 만든 자리에 2동의 텐트가 겨우 들어가니 말이다.

날씨도 쾌청하고 내일의 정상공격이 순조로와 보인다. 텐트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니 각국 원정대의 대원들이 긴 꼬리를 물고 로체페이스를 수놓는다. 밀려오는 사람들을 보니 서둘러야 겠다는 생각에 안전벨트와 아이젠을 차고 스타트지점의 휙스로프에 어센더를 건다.

로체페이스를 좌측으로 길게 횡단하여 옐로우밴드를 넘어서니 긴 설원이 이어지고 경사있는 설원이 또 나타난다. 햇살이 강렬하여 바람이 간간이 부는데도 후끈한 열기가 느껴진다. 설원은 끝에가서 경사가 심해지며 C4로 가는 마지막 관문인 1시간 가량의 주마링이 이어지는 벽을 넘어서면 오른쪽의 쇠말뚝을 끝으로 길에 이어진 너덜지대가 보인다.

약 40분 가량의 너덜지대를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설치해 놓은 고정줄에 통과를 시키지 않으면 왼쪽 돌무더기가 있는 사면으로 추락하기 쉽상이다. 아이젠이 발에 걸려 넘어지거나 균형이 제대로 잡히질 않으면 미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아이젠을 벗는 것이 나을 듯 싶다.

오른쪽으로 휘돌아진 이곳을 통과하여 사우스콜에 도착했는데 왼쪽편 남봉 정상부위에 타원형으로 길게띠를 이루며 흘러가는 구름이 심상치 않아보인다. C4의 초입에 자리를 마련하고 텐트를 치려고 하니 바람이 너무 거세 3명이 달라 붙는데도 힘이든다. 티벳쪽과 사우스콜 주변의 풍광을 서너 컷 카메라에 담고는 서둘러 텐트안으로 들어간다.

오후 늦게야 도착한 병구의 몸 상태가 썩 좋질 않아보여 걱정이 앞선다. 누룽지를 끓여 식사를 마치고 차 한잔을 마시니 이제야 몸이 좀 녹는 것 같다. 병구는 잘 때도 계속 신음소리를 낸다. 빨리 괜찮아져야 할텐데 하는 마음뿐이지 어떻게 해줄 수 없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계획대로라면 오늘밤이 정상으로 향해야 하지만 쉴새 없이 텐트폴을 반쯤 휘어지게 불어대는 바람으로 베이스에서도 속수무책인 것 같다. 예측불허의 날씨로 각국에서 취합한 기상예보도 거의 맞질 않으니 말이다.

셀파쪽의 텐트에서도 거의 움직임이 없다. 가끔 이쪽으로 고개만 내밀고는 Are you OK? 를 외치며 텐트안에서 꼼짝도 하질 않는다. 가끔 베이스와 교신으로 이곳의 상황을 전해주고 밤 11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든다. 바람아 멈추어 다오~~!!

5월 22일 (C4 대기~하산, 1차 공격실패)

밤새 잠을 못진 병구의 상태가 예상외로 심각해 보인다. 날씨는 바람만 없으면 아주 좋을 듯 싶다. 체감온도는 -30도를 웃도는 것 같다. 원피스우모복을 입고도 밖으로 나가면 살을 에이는듯 하니 말이다. B.C로부터 교신이 온다. 김병구 대원은 하산하고 나는 C4에 남아 오늘 밤을 D-day로 잡아 공격을 시도할것이라는 것이다. 같이 정상을 꼭 오르자고 다짐하며 올라왔건만 힘들게 내려가는 병구의 뒷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바람은 점점 거세어져 사우스콜을 집어삼킬 듯 휘몰아친다. 그 와중에 다른 팀들의 텐트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하산을 서두르는 모습이 눈에 띈다. 우리팀의 예보대로하면 오늘 날씨가 좋아질것이라는데 좀 의아스럽기도 하지만 지금의 상태라면 당연히 하산을 서두르는 것이 맞을것이다.

하루종일 텐트안에 있으려니 답답하다. 오후가 되니 이제는 눈과 바람이 함께 불어대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텐트안에서 잣죽,깨죽,선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노래도 불러보고 누웠다 앉았다 혼자 셀프카메라도 찍어보고 별짓을 다해본다. 물을 데우려고 버너불을 키는것도 고역이다. 산소부족으로 성냥의 황만 타들어가 텐트안은 온통 냄새로 가득하고 서울서 가져온 일회용 라이터도 잘 켜지질 않아 애를 먹는다.

텐트의 입구는 벌써 3분의1이 바람이 가져다 준 눈으로 막혀있다. 한가지 좋은점은 따로 눈을 채취하러 나가진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그 와중에서도 내 뱃속에서는 먹은 것을 밀어내려는 운동이 한창이다. 할 수 없이 원피스를 벗고 대작업에 들어간다. 나름대로 머리를 써 작은놈을 먼저잡고 큰놈은 가져온 비닐봉지를 깔고 볼일을 보는데 오늘따라 변비기운이 있는지 나올놈이 나오질 않고 고개만 삐죽거린다. 7,900의 고도에서 30여분을 울퉁불퉁한 놈들과의 사투를 벌이는데 다리에 힘이빠지고 호흡이 가빠온다. 산고의 고통이 이보다 더 하진 않을 듯 싶다. 일을 다 보곤 그 자리에 꿇어 앉아 버렸다.

북적대던 C4는 다들 하산하여 이제 한양대와 우리팀만이 남은 것 같다. 저녁을 먹고는 무전기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왠지 모를 긴장감에 혼자있는 텐트안이 더 을씨년 스러운것 같다. 과연 이 눈보라를 뚫고 정상에 설수 있을까? 라는 의문과 정상에 올라가더라도 하산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매시간마다 이어지는 B.C와의 교신은 별다른 대안없이 이곳의 날씨만 계속 되풀하여 설명한다. 원정기간이 너무 길어져 다들 애를 태우며 기다렸던 순간인데 이상기후로 이렇게 뒤돌아 서야 한다는 생각에 텐트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무전기를 통해 내일 하산하라는 대장님의 목소리가 계속 귓가를 윙윙돈다.

11시가 넘어서야 취침을 하려고 하지만 잠이 잘 오질 않는데 셀파가 내 텐트로 들어와 아쉬운 표정으로 쳐다본다. 대답은 뻔하지만 빈말로 내가 내일 하루 더 기다려 보자고 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댄다. 왠지 모를 억울함이 밀려온다. 1차 공격이 무산되고 내일 하산한다는 생각에 다시 긴장감이 풀어져 추위가 엄습해온다. 가져간 온팩을 발바닥에 붙이고 끓인물을 수통에 넣어 침낭속에 넣어 발을 부벼보지만 한번 얼었던 손과발은 아리듯이 아파온다. 레귤레이터를 게이지 1에 맞추고 산소마스크에 고인 물을 털어내고 잠을 청해본다.

잠을 자는둥 마는둥 뒤척이다 아침을 선식으로 해결하고 홍삼엑기스를 한잔 타먹고는 하산준비를 서두른다. 텐트를 전부걷지 않고 폴의 고정부분만 빼고는 카고백에 장비며 식량을 담아 바람에 텐트가 날아가지 않도록 그 위에 정돈을 하고 우리의 자리라는 것을 표시를 하고는 하산을 시작한다. 다시 와야한다는 부담감도 함께 가지고.. 다시 너덜지대를 돌아 바위지대를 내려서는데 올라올때는 몰랐지만 경사가 만만치 않다. 캬라비너와 로프를 함께 잡고 다른손은 허리에 감아 내려가는 셀파식 하강으로 부담스러운 곳을 벗어나 C3에 도착하니 이젠 안도감이 든다.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로체페이스를 빠른 속도로 내려간다.

로체페이스 초입에는 우리팀의 고소포터인 데니스가 탱쥬스를 타가지고 마중을 나와있다. 베이스와 C2, C3를 오가며 궂은일을 마다않던 체격이 좋은 포터이다. 허지도 지고 목도마르고 해서 2컵을 게눈감추듯 먹고는 C2로 향한다. 발안쪽을 얼음사면의 마찰을 이용하여 내려오기 때문인지 양쪽 발바닥이 따끔거린다. 이곳은 어센더링이나 인사이드 스텝이 대부분 오른쪽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나처럼 왼손,왼발을 많이 쓰는 사람들은 오른쪽으로 사용하는 훈련을 많이 하고 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C2에 도착하니 병구는 설맹에 걸려 누워있고 C2 매니저인 일섭형과 쿡 다와가 반겨준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로체 C4를 출발했다던 원식이가 아직 도착을 하질 않는다. 원식이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말에 괜히 걱정이 앞선다. 오후 6시가 넘어서야 맥이 풀려 발걸음도 휘청거리며 걸어오는 원식이가 반갑고 고맙기만 하다. 산소를 안쓰고 계속 로체C4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나와 병구, 그리고 원식이는 C2에 남고 나머지 셀파들을 모두 B.C로 내려간다. 다음날 원식이와 병구도 함께 10시간이 넘도록 힘들게 하산을 하여 B.C에 내려갔다는 무전교신을 받았다. 수고했다. 후배들아~~!!




5월28일 (C2~C3)

5일간의 휴식과 B.C에서 올려준 소고기와 닭, 등으로 체력을 보충해서인지 컨디션은 아주좋다. 새벽5시에 기상하여 아침식사를 쌀죽으로 해결하고 일섭형의 배웅울 받으며 나와 셀파 락파, 빠다 이렇게 셋이 길을 나선다. 당초 예상했던 정상공격일인 27일 어제 아침 들뜬 마음으로 C2를 떠나 로체페이스 시작되는 설벽까지 걸어가 바람이 거세지고 구름이 잔뜩 낀 날씨에 허탈한 마음으로 다시 되돌아 오는일이 있었다. 신이여 도와주소서~~!! 밤새 기도를 해서 그런지 오늘따라 날씨는 바람도 잔잔하고 햇살이 강렬한 것이 아주 기분이 좋다.

우모복을 입고 로체페이스를 올라가는데 여느 때와 달리 바람이 불지 않아 몸안에 열기가 가득하다. 장갑도 얇은 윈드스토퍼 하나만을 끼고 올라가는데도 후끈하다. 3번째 올라가는 C3라 이젠 길도 익숙해지고 루트도 거의 파악을 해서 그런지 속도가 많이 빨라짐을 느껴본다. 조금일찍 출발을 했기에 병목현상도 없고 호젓한 하게 올라가며 주변의 경치도 카메라에 담아본다.

C3에 도착하니 두동의 텐트중 왼쪽의 하나는 위쪽에서 흐르는 눈으로 인해 3분의 2쯤이 눈에 묻혀있고 나머지 한 동은 밑으로 내려앉아 반쯤이 묻혀있었다. 베이스에서는 텐트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위로 올라오지만 이곳은 설벽을 깎아내고 눈을 다져 만들어서 그런지 밑으로 내려앉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다른 상업등반대나 원정대가 상단 넓은 곳에 텐트를 여러 개 쳐놓아 자리가 없어 이런 곳에 텐트를 쳤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B.C와 C2는 물론이고 최소한 C3까지는 미리 좋은 텐트자리를 확보해 놓는 것이 옳다고 본다.

눈이 굳어 삽으로 파내길 두 시간 가량의 작업 끝에 묻힌 텐트에서 식량을 꺼내고 다른 한동의 텐트주변을 정리하고 엎드리듯 텐트안으로 기어 들어간다. 텐트문을 닫으면 찌는듯한 더위에 숨이 막힐 정도로 뜨거운 햇살이다. 저녁을 알파미로 해결하고 내일 일정에 대한 개략적인 토론을 마치고 잠자리에 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 같은 날씨가 계속 이어지길 기도해본다.



5월 29일 (C3~C4)

새벽 5시 기상하여 산소와 레귤레이터를 점검하고 간식을 챙기고 물을 끓이고 누룽지로 아침을 해결한 후 텐트밖을 나와보니 벌써부터 주변이 부산하다. 저 멀리 C2에서 올라오는 사람들도 보인다. 우리 텐트가 길목에 있어서 그런지 셀파들끼리는 서로 인사도 나누며 가끔 내가 아는 사람들도 눈에 뜨인다. B.C에서 여러 원정대들과 교류를 나누고 친분을 두텁게 만드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는듯하다. 날씨 및 등반에 대한 정보를 나눌 수 있어서 좋고 힘들 때 옆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너는 강하다 힘내라” 라는 무언의 응원을 받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로체페이스 상단의 설원을 셀파와 멤버들이 뒤섞여 길게 띠를 이루며 올라간다. 이번이 모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을 하는지 그들의 얼굴에는 고통보다는 비장한 각오가 엿보인다. 출발을 준비를 거의 마칠무렵 사다 옹추와 락파 셀파가 올라온다. 옹추는 몸의 상태가 않좋은 데도 여기까지 올라온걸 보면 많이 부담을 느껴서인가 생각이든다.
우리팀의 사다 옹추는 빠르게 올라가 비디오를 촬영하느라 바쁘다. 이리 저리 오가며 등반모습을 담으려 분주하게 움직인다. 몸 상태가 않좋은데도 열심히 촬영에 임하는 모습을 보며 프로의 정신이 돋보임을 느낀다.

옐로우밴드를 지나 왼쪽으로 굽어진 경사진 설원을 통과하여 사우스콜에서 흘러내린 푸석진시커먼 돌들로 이루어진 5피치의 제네바스퍼를 넘어서면 사우스콜인데 이곳에서 부터는 너덜지대가 시작된다. 많은 주의를 요하는 곳이라 쉽다고 방심하면 매우 위험한 상황에도 빠질수가 있다. 특히 고글을 쓴 상태에서는 확보줄과 발의 스텝이 잘 안보이게 됨으로 항상 통과를 한 후 확인을 하고 아이젠은 될 수 있으면 벗는 것이 좋은데 힘든 상태에서는 그것이 잘 안되는 것 같다. 그냥 아이젠이 걸리지 않게 조심해서 천천히 가는 것이 요령이다.

C4에 도착하니 미리 와있던 락파,빠다 셀파는 텐트를 쳐놓고 물을 끓이고 있었다. 사다 옹추와 함께 이렇게 네 명이 한 텐트에 있으려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락파 셀파는 몸이 C3에서부터 좋질 않아 C4에 도착해서는 아예 침낭을 덮고 계속 잠만 잔다. 이래가지고 올라갈 수 있으려나 하는 불안감도 함께 든다.

저녁을 닭고기스프에 알파미를 넣고 푹끓여 반코펠을 거의 다 비우고는 B.C와 무전교신을 한 후 잠깐의 잠을 청해본다. 하지만 조금 있을 정상으로의 출발에 대한 기대감과 긴장감에 좀처럼 잠이 오질 않는다. 뜬눈으로 그냥 산소만 마시다 일어나 정상에 올릴 스폰서깃발과 간식이며 산소마스크 등을 점검하고 물을 끓이고 있으려니 주변이 하나 둘 불빛이 비춰진다. 밤 8시가 조금 넘은 것 같다. 다들 텐트에서 이것 저것 챙기느라 바빠보인다.

비좁은 텐트안에서 아이젠과 안전벨트를 차려니 이 또한 고역이다. 눈치빠른 사다 옹추가 내발을 번쩍 들어올려 자기 무릎에 올리더니 아이젠을 채워준다. 됐다고 하니 자기가 못가니 서비스로 해주는 것이란다. 싸움에 임하는 병사의 마음이 다 이럴까? 랜턴을 키고 밖으로 나오니 차가운 바람에 코끝이 찡하다. 다른 원정대의 대원들이 하나둘씩 어느 한곳을 향해 걸어간다. 레귤레이터를 게이지2에 맞추고 산소마스크를 착용하고 우모장갑을 끼고 피켈을 들고는 빠다 셀파를 선두로 내가 중간에 서고 끝에는 락파가 선다. 현재시각 10시가 조금 넘는다.

드디어 출발~~!! 남봉을 향한 불빛들이 점점 늘어만 간다. 이번 시즌의 첫 등정의 맨 선두에 섰다는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진다. 설사면을 조금 올라 첫 구간은 청빙으로 이루어져 피켈이 거의 필요없고 휙스로프에 어센더를 걸어야 하는데 빌린 우모장갑이라 손에 잘 맞질않아 애를 먹는다. 하는 수 없이 피켈을 등과 배낭사이에 꽂아 넣고 우모장갑을 벗고 가슴에 품었던 윈드스토퍼장갑을 꺼내어 바꿔낀다.

이어지는 구간은 온통 푸석한 바위로 이루어진 직상루트다. 예상보다 경사도가 만만치 않다. 어느 구간은 용을 써야 넘어갈 정도로 힘든구간도 가끔 나타난다. 1시간 여를 오르고 있는데 위에서 주먹만한 얼음덩어리가 떨어져 오른쪽 가슴쪽을 때린다. 다행히 주머니에 쑤셔넣은 사탕과 초콜렛등이 충격을 완화시켜준다. 컴컴한 위에다 대고 혼자 뭐라고 떠들어댔는지 기억은 잘 나질 않지만 이곳은 돌과 낙빙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약 3시간여의 지겨운 푸석지대를 넘어 오른쪽으로 트래버스를 잠깐 하고 왼쪽으로 이어진 능선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바로 발코니이다.

어두워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잘 가질 않았지만 경관이 한눈에 탁 틔이고 잠시 앉아 쉴수도 있는 것을 사진을 통해 보았기 때문에 짐작은 간다. 날은 아직 밝지 않아 나름대로 사진을 통해 보고 또 보았던 산들을 어두운 공간에 그려본다. 선두 빠다 셀파와는 약 20미터 간격으로 거리를 두며 올라갔고 후미 락파 셀파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어두워 누가 누군지 구분도 잘 가질 않았으나 랜턴불빛의 밝기와 색깔로 대충 짐작을 해본다.

휴식은 따로 필요 없는 듯하다. 그냥 서서있다가 앞에서 전진하는 속도에 맞춰 올라가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으면 발이 시려울 정도로 쉬는 시간이 많아지자 사람들이 지쳐하는 모습이 눈이 보인다. 새벽이 가까워져 오자 저멀리 오른편으로 빨간 지평선 넘어 여명이 밝아온다.

주변의 산들이 하나 둘씩 어슴프레하게 눈앞으로 다가온다. 저멀리 마칼루 왼편으로는 검은 먹장구름이 드리워져 있는데 그 속에서 노란 번개가 2시간 동안이나 번쩍번쩍 계속 쳐 소리는 들리질 않았지만 신께서 정상으로 가는 사람들을 위해 불꽃놀이를 해주시는구나 라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왠지 모든 것이 잘 풀릴것 같은 기분도 함께…

남봉 상단부는 눈이 많이 처음 밟는 곳은 무릎이상까지 빠지는 눈이 쌓여있었다. 내가 너무 앞에 서질 않아 다행인 것 같다. 발에는 약간의 동상기운이 있어 엄지발가락 앞 끝이 무척 아려온다. 쉬는 시간마다 아이젠 피크쪽을 설벽에 계속 차면서 마찰을 일으켜 보려고 하였으나 시려운건 마찬가지다.

이젠 날이 밝아 주변의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푸모리도 외딴 섬처럼 조그맣게 보이고 마칼루며 주변의 산군들이 발아래 펼쳐지니 내가 높이 올라왔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남봉의 정상에 올라 B.C와 교신을 한 후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정상을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간다. 날씨는 약간의 바람은 있었으나 아주 쾌청하고 좋은 날씨다.

구간 구간 휙스로프가 모자랐던지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구간인데도 그냥 지나치는 곳이 몇 군데 있었다. 그리고 로프가 내려오고 올라가는 사람을 위해 최소한 두줄은 고정이 되어야 하는데 그냥 외줄로 되어있는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사람들이 겹치게 되면 곤란할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몇 번 오르락 내리락 하자 힐러리 스텝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정체했다. 개인적인 테크닉이 많이 부족하고 덩치 큰 외국인들(특히 상업등반대)이 아이젠에 불꽃을 튀기며 바위를 벅벅 긁어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기본적인 클라이밍은 배우고 왔어야 하는데 아이젠을 신고 바위를 올라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힐러리스텝은 눈이 조금 있을것으로 예상되었는데 눈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첫 스타트 지점 한 두 스텝이 관건인데 그곳에서 시간이 많이 지체되는 것 같다. 상단에 크러스트된 눈이 조금 있었으나 그것마저 두 세 사람이 올라간 후에는 무너져내려 더 어려운 루트가 되어버렸다.

약 5미터의 직상하는 루트인데 왼손으로는 그 전에 설치해놓은 휙스로프를 여러 가닥 손에 쥐고 오른손은 어센더를 걸고 아이젠 앞끝 피크부분을 바위에 걸치고 한번에 몸을 튕기며 어센더를 쭉 밀어올리는 것이 요령인데 몸집 큰 서양인이나 여자들에겐 좀 버거운 코스인 것 같다. 이곳을 올라 왼쪽으로는 절벽인 곳을 돌아 올라가면 설사면이 이어진다.

설사면을 약 10미터만 올라가면 정상으로 이어진 4개의 커니스로 이루어진 설릉이 보인다. 이젠 다 왔다는 안도감과 정상이 눈앞에 있다는 흥분이 나에 몸을 감싸온다. 잠시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카메라를 꺼내 들고 이곳 저곳 촬영을 했다. 조금 더 천천히 정상을 밟기 위해서이다. 눈앞에 보이는 정상을 향해 가는 발걸음에 힘이 실리는 듯 하다. 정상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가져온 깃발이며 사진을 꺼내들고 환호성을 지르고 촬영에 여념이 없는듯하다.

"대장님 정상입니다.”
"수고했다. 컨디션은 어떤가?"
"컨디션도 좋고 날씨도 아주 좋습니다."
"몸 조심해서 천천히 하산하길 바란다”


지금이 70년대도 아니고 돈만 있으면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을 왔는데, 대규모 극지법 원정대를 반대하던 나인데. 정상에서 절대 울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였건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이번 원정을 위해 긴 시간을 함께하고 운동하며 산행했던 기억들과 때로는 질책하던 선배님들의 모습, 그리고 대원들의 무사귀환을 위해 기도하는 가족들의 얼굴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B.C에서 기도하시던 대장님의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예전의 중국의 삼각대는 없어지고 정상의 상징인 솟대모양으로 꼭대기엔 빨간천으로 우산살처럼 퍼지게 해놓았다. 그리고 중간에 오색기가 걸려있고 목에 두르는 가다가 묶여있었다. 밑부분은 조형물인 황금색 네팔국기가 있었다. 이 주변으로 온통 셀파,멤버 할것없이 모여드는 바람에 정상사진을 왼쪽 3미터 옆에서 촬영해야했다. 정상 뒤편 으로는 각국 원정대가 버리고간 깃발이며 쓰레기로 너저분하여 보기에 좋질 않았다. 촬영을 마치고 바람이 세다고 느껴질 때 정상 왼편으로 엄청난 규모의 짙고 큰 구름이 이쪽으로 밀려오는 것을 보니 하산을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앞선다.

삽시간에 밀려드는 구름으로 힐러리 스텝을 내려가자 바람은 예상보다 더욱 강하게 불어댄다. 때로는 고글과 산소마스크의 틈새로 눈이 들어와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밑에서 거꾸로 휘몰아쳐 고개를 숙이면 우모복원피스의 모자가 휙휙 벗겨질 정도로 불어댄다. 눈보라를 동반한 바람과 7시간을 씨름하며 C4에 도착하여 B.C와 교신한 후 차 한잔을 끓여 마시곤 그냥 잠이 들었다.

이번 원정은 창학 100주년을 맞은 학교와 내년이면 창립 70주년을 맞을 양정산악회 그리고 모든 양정인의 바람인 84년도 에베레스트의 실패에 대한 숙제를 풀었다는 것이 영광스럽고 등정을 허락해주신 신께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를 계기로 성찰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양정산악반의 자랑스런 전통이 꾸준히 이어지고 더 나아가서는 산악회와 5만 양정동문들의 단합에 일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 동안 저희 홈페이지에서 응원해 주시고 전화로 격려해주시고 때로는 직접 베이스캠프로 오셔서 파이팅을 외쳐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끝으로 이번 원정을 뒷바라지를 위해 애쓰신 형수님들과 제수씨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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