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등반기

한국원정사 1977~1978년

한국,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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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산악연맹 에베레스트 원정대

75년과 76년 두 차례에 걸쳐 에베레스트 지역 정찰을 마친 대한산악연맹은 77년 6월 11일 발대식을 갖고 공식적으로 ‘77한국 에베레스트원정대를 출범시켰다. 원정대장은 당시 대산련 회장직을 맡고 있었던 김영도(53) 공화당 국회의원이 맡았고 등반대장에 장문삼(35), 등반부대장에 박상열(33·경북산악회), 그리고 이윤선(36·강원연맹), 김명수(33·양정산악회), 곽수웅(33·부산대륙산악회), 고상돈(29), 한정수(29·하켄클럽), 이상윤(29·명지대), 김병준(28·한국외국어대), 조대행(31·카톨릭의대), 이기용(28·설령산악회), 이원영(27·한국등산학교 강사), 도창호(26·동국산악회), 김영한(30·대전쟈일클럽), 전명찬대원(25·부산청봉산악회)과 보도대원으로 한국일보사에서 파견한 김운영(44), 이태영기자(36)가 참가해 총인원 18명이었다. 이 원정대의 예산은 모두 1억 3천여 만 원이었는데 정부에서 6천만 원을 지원받고 나머지는 한국일보사가 나서서 11개 기업체의 협찬을 받아 충당했다.

▲ 베이스캠프에 모인 대한산악연맹 에베레스트 원정대원들. 뒷줄 좌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조대행, 전명찬, 고사돈, 이상윤, 이윤선, 곽수웅, 김병준, 이기용, 도창호, 김영한, 장문삼, 김영도, 이태영, 김운영, 이원영, 박상열, 김명수대원.

한국은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도전하는 10번째 국가이자 원정대로는 25번째 팀이었다. 1953년부터 77년에 이르는 24년 동안에 초등루트인 남동릉 외에 북동릉(60년 중국)과 서릉 혼바인 꿀르와르(63년 미국),그리고 남서벽(75년 영국)에 새 루트가 추가되어 있었다. 그중 한국대가 택한 루트는 53년 영국대가 오른 사우스콜을 경유한 남동릉이었다.
원정대가 카라반을 시작한 지 21일 만인 8월 9일, 1진이 5,400미터의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이때는 아직 몬순기가 끝나지 않았으나 원정대는 등반기간을 벌기 위해 8월 11일부터 등반에 들어갔다. 이로부터 26일만인 9월 6일 8천미터 지점의 사우스콜에 네 번째 캠프가 설치되었다. 극지법 등반치고는 빠른 전진이었다.
9월 8일에는 남동릉 8,510미터 지점에 5캠프가 설치되었고, 다음날 새벽 6시 30분, 1차 공격조로 지명된 박상열 등반부대장과 앙푸르바 셀파가 정상을 향했다. 그러나 깊은 눈을 헤치며 나아가자니 예상 외로 많은 시간이 소모되었다. 눈은 올라갈수록 깊어져 10미터를 전진하는 데 40분이나 걸리는 곳도 있었다.
오후 1시 50분에 간신히 남봉(8,763m)에 도착한 공격조는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정상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미 두 사람의 몸은 고소에서의 러셀로 체력소모가 커 거의 탈진상태에 있었다. 시간 감각마저 흐려져 산소통의 잔량을 체크할 판단력도 잃었다. 여기에다 설상가상으로 8,800미터 지점에 있는 일명 힐라리 스탭이라는 수직 침니를 막 올라섰을 때 산소까지 바닥나버렸다. 정상을 거리상으로 불과 100여 미터 놔두고 체력의 한계점에 도달한 두 사람은 오직 살기 위해서 돌아서야 했다. 이때는 오후 5시가 넘어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탈진한 두 사람은 남봉으로 겨우 돌아와 데포해 놓았던 산소통을 발견했으나 벨브를 열 기력 조차 없었다. 8,600여 미터의 고도에 이르렀을때 앙푸르바가 하산을 포기하고 누워버렸다. 혼자 힘으로는 더이상 움직일 수 없는 상태까지 이른 것이다. 여기서 박부대장은 비박을 결심했다.
거의 탈진상태에서 비몽사몽간에 하룻밤을 버틴 두 사람은 다음날 새벽 날이 밝아오면서 200여미터 아래 있는 5캠프를 발견했다. 만 하룻만에 구사일생으로 되돌아오게 된 것이다. 비록 등정은 못했지만 두 사람의 비박은 당시까지 등반사상 가장 높은 곳에서의 무산소비박으로 기록되었다.
김영도대장은 절박한 심정으로 2차 공격조로 고상돈대원과 펨바노르부 셀파를 지명했다. 이제 올려진 산소는 단 한번의 정상공격만을 할 수 있는 7통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좀더 철저한 작전과 지원계획을 세워야 했다.
9월 15일, 2차 공격조로 선발된 고상돈대원과 펨바노르부 셀파는 5시 30분 마지막 캠프를 떠나 정상을 향했다. 이들은 1차 공격조가 만들어 놓은 러셀 자국 덕분에 비교적 순조롭게 전진을 거듭한 끝에 오전 9시 30분 남봉(8,763m)을 통과했다. 1차 때보다도 3시간 20분이나 빠른 운행이었다. 두 사람은 힐라리 스탭을 넘고 박상열대원이 후퇴한 그 지점을 통과하여 오후 12시 50분 마침내 지구의 용마루에 올라섰다. 등반개시 36일 만의 일이었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에서 8번째 에베레스트 등정국가가 되었고 고상돈대원은 58번째 등정자가 되었다. 한국대가 세운 9월 15일 등정은 포스트몬순기에서는 가장 빠른 날짜로 이 기록은 15년동안 깨어지지 않았다.

한국원정사 1980~1982년  

비정의 마나슬루, 드디어 등정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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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산악회 마나슬루원정대

80년대의 첫 히말라야 진출이라고 할 수 있는 동국산악회의 원정은 그 대상이 한국산악인들에게는 비운의 산으로 기억되는 마나슬루(8,163m)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71년부터 76년까지 3차례에 걸쳐 6명의 국내산악인을 앗아가고도 끝내 정상을 허락하지 않은 산, 그 험난한 마나슬루에 일개 대학 단일팀이 도전장을 낸 것에 대해서 우려의 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동국대는 76년의 토왕성빙폭 하단부 초등정과 희양산 암벽에서의 개척등반 등에서 얻은 기술과 조직력으로 마나슬루원정대를 꾸렸다. 대원은 이인정(35)대장을 비롯해서 이영진(33), 김광진(30), 유태원(28), 양명수(27), 서동환(27), 이종량대원(25) 등 7명이었다.

▲ 84년 남벽을 통해 마나슬루 동계초등에 성공한 폴란드대원들. 정상에서 동국대 깃발과 태극기를 갖고 내려와 80년 동국대의 등정의혹을 풀어주었다.

원정대가 12명의 셀파와 123명의 포터를 고용하여 13일의 카라반끝에 3,780미터의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것은 3월 19일이었다. 이틀 뒤에 등반을 개시하여 3월24일에 1캠프(4,880m), 4월 1일에 2캠프(5,500m), 10일에 3캠프(6,350m), 20일에 4캠프(6,900m), 그리고 22일에는 이종량대원과 3명의 셀파가 7,500미터 지점에 설동을 파서 5캠프로 삼았다. 이어서 4월 23일에는 이대원과 파상노르부, 락파텐징 셀파 등 3명이 정상공격을 시도하려 했으나 때마침 불어닥친 강풍과 혹한 때문에 공격을 단념하고 일단 후퇴했다.
전열을 가다듬은 원정대는 4월 27일 서동환대원과 아지와 셀파를 2차 공격조로 지명, 마지막 캠프를 출발시켰다. 새벽 6시 30분에 정상을 향해 출발한 세 사람은 그러나 이번에도 마나슬루 특유의 강풍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섰다.
다음날,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3차 정상공격이 시작되었다. 서대원과 아지와, 앙파쌍 셀파 등 3명은 아침 7시 20분에 캠프를 떠났다. 이날은 요행히도 날씨가 쾌청했다. 서대원은 피나클을 지나 산소통을 교체하고 등반을 계속했다. 조금 더 가자 오른쪽으로 전위봉이 보였다. 고도계가 8,100미터를 가리키는 곳에 이르니 정상 암봉이 보였다. 오후 1시 30분에는 정상 암봉 아래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기다시피 암벽을 오르니 티베트쪽에서 맞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정상이었다. 바람 때문에 도저히 몸을 지탱할 수가 없어 하켄을 박고 사진을 찍었다. 이들은 갑자기 악화된 날씨 속에서 8시간이나 걸려 마지막 캠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서동환대원은 이때 발가락에 동상을 입어 귀국 후 수술을 받아야 했다.
이로써 한국인에게 16명의 생명을 앗아간 비정의 산 마나슬루는 4번째 원정에서 마침내 정상의 문을 열어주게 되었다. 이것은 한국인이 오른 두 번째 8천미터급 등정기록이며 국내 최초로 단일 산악회팀이 이룩한 개가였다.

한산원정대, 세계 5위의 마칼루 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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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악회 마칼루 학술원정대

82년 프레몬순의 마칼루, 람중히말, 닐기리 중앙봉에 도전한 3개 팀 중 한국산악회가 사단법인 인가 후 첫 사업으로 추진한 마칼루 학술원정은 그 명칭에서 나타나듯이 국내 최초로 학술조사를 겸한 히말라야 원정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산악회가 문교부에 학술단체 법인으로 등록되어 해외 원정에 있어서도 학술목적에 한해서만 추천권한이 있었기 때문에 취했던 고육책이었다.
마칼루(Makalu)는 네팔과 티베트의 국경을 이루는 중부히말라야에서도 쿰부 산군 동쪽에 위치해 에베레스트의 관문인 남체바잘에서 불과 38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세계 제5위의 고봉이다. 산의 이름은 힌두교 시바신의 화신(化神) ‘마하카라’에서 비롯된 것으로 산스크리트어로 이것은 ‘검은 신’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 세계5위봉 마칼루 전경.
82년 봄시즌 한국산악회가 이 산에 원정대를 파견했다.

마칼루의 모습은 1921년 영국의 에베레스트 정찰대가 북카르마 계곡으로 들어가 웅장한 자태를 촬영하여 처음 알려졌고, 본격적인 등반은 54년 봄 미국대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이들은 동남릉으로 등반을 시도하여 7200미터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다음해인 55년 장 프랑코대장이 이끄는 프랑스대가 북서릉 초등정을 이루었다. 이들은 5월 15일, 16일, 17일 3회에 걸쳐 9명의 대원 전원이 등정해 세계산악계를 놀라게 했다.
82년 봄 한국원정대는 함탁영대장(44)의 지휘아래 신승모부대장(37), 허욱(29), 이찬영(28), 허정식(28), 허영호(28), 남선우(27), 민병국(27), 송병호(27), 신형기(26)대원 등 9명의 등반대원과 이기주(44·의료담당), 이근후(48·민속담당), 성익환(30·지질담당) 등의 학술조사팀, 그리고 민상기(34), 양진수(33), 이은원(26) 등 한국방송공사에서 파견한 보도대원 등 모두 16명으로 구성된 대부대였다.
원정대는 선박편으로 인도 캘커타로 보낸 원정물자의 통관이 늦어져 선, 후발대로 나뉘어 베이스캠프(4,740m)에 도착했다. 그리고 장장 10킬로미터에 달하는 마칼루의 동남릉을 46일간 공략끝에 5월 17일 7,400미터 지점에 5캠프를 설치했다. 그리고 5월 20일 6캠프(7,700m)를 떠난 허영호대원과 파쌍노르부, 앙푸르바셀파 등 3명이 동측 설벽을 통해서 정상을 등정하는 데 성공했다. 허대원은 마지막 캠프에서부터 산소를 사용하면서 9시간 30분의 등반끝에 정상에 서는 영광을 얻었다.
한국산악회의 마칼루 등정은 77년 에베레스트, 80년 마나슬루 등정에 이어 한국의 세 번째 자이언트봉 등정기록이며 한국산악회가 78년 안나푸르나 4봉 등정에 이어 얻어낸 두 번째 히말라야 등정성과였다.


양정, 은벽과 합동으로 닐기리 중앙봉 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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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산악회 닐기리 중앙봉원정대

마칼루팀과 같은 시즌에 닐기리 중앙봉에 도전한 양정-은벽산악회합동대는 5명의 대원에 2명의 셀파를 합쳐 도합 7명이 한꺼번에 정상을 등정해 81년 가을 성대팀이 세운 4명의 기록을 갱신했다.
닐기리 중앙봉(6,940m) 원정은 이해 1월에 동계 에베레스트 정찰을 마친 양정산악회의 김기혁(28), 심상돈(28), 임병길(27)대원이 현지에서 입산허가를 받아 급조되었다. 정찰을 끝내고 자금 조달이 어려웠던 이들은 마침 안나푸르나 정찰차 네팔에 온 은벽산악회팀에게 합동원정을 제의했다. 그리하여 은벽산악회에서 안창열(32), 김현수(27), 김광(27), 김영자대원(여·29)이 합류하자 총대원은 7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고정로프와 연료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캠프 전진을 강행해 등반 개시 9일 만인 4월 22일에는 3캠프(6,150m)를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4월 25일 새벽 4시 30분 김기혁대장과 심상돈, 임병길, 김현수, 최광희대원과 2명의 셀파 등 7명이 동시에 정상공격에 나섰다. 40미터 로프 1동으로 안자일렌을 한 일행은 오후 1시부터 불어닥친 눈보라를 뚫고 드디어 전원이 정상에 올라섰다.
그러나 이들은 하산 도중 김광대원이 실족해 발목 골절상을 입자 그를 후송하느라 자정 넘어서야 마지막 캠프로 돌아왔다. 다음날 원기를 찾은 대원들은 계속 하산했으나 심상돈대원은 최대원을 간호하기 위해 제3캠프에 남았다 그러나 다음날부터 날시가 악화되어 그를 후송하지 못하고 10일간을 버틴 끝에 극적으로 생환했다.

아마다블람 동계초등과 틸리초 등정 이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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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아마다블람 동계원정대

3개의 한국대 중에서 가장 먼저 정상을 밟은 팀은 아마다블람원정대였다. 이미 전년도에 푸모리에서 국내 최초로 동계등정에 성공한 바 있는 남선우대장(28·양정고, 중앙대)은 김영수(35·중앙대), 임병길대원(28·양정산악회)과 함께 아마다블람의 동계초등을 노리고 소규모 원정대를 꾸렸다.
아마다블람(Ama Dablam)은 비록 7천미터에 못미치는 봉우리이지만 호쾌한 릿지와 아름다운 설벽으로 이루어져 산악인들의 등반욕구를 채워줄 아주 매력적인 봉우리로 여겨져왔다. 에베레스트가 있는 쿰부 계곡의 가장자리에 우뚝 솟아 있는 이 산은 일대의 산기슭 어디서고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산의 이름은 셀파어로 어머니를 뜻하는 ‘아마(Ama)’라는 단어와 목걸이를 뜻하는 ‘다블람(Dablam)’이 합쳐진 것이다.
83년 겨울 이 산의 동계초등정을 노리고 찾아든 한국대는 3명의 대원과 2명의 셀파로 속공 등반을 펼쳤다. 동계등반 개시일은 12월 1일부터로 규정되어 있었지만 한국대는 11월 말의 좋은 날씨를 이용해 1캠프(5,350m)까지 물자 수송을 마쳤다. 그리고 12월 2일에는 남서릉상의 가장 어려운 50미터 크랙 지점을 돌파 두 번째 캠프(6,150m)를 전진시켰다.
12월 4일 세 번째 캠프 설치를 위해 셀파와 함께 등반을 개시한 남대장은 6시간 만에 3캠프(6,450m)에 도착해 여기에서 다음날 곧바로 정상공격에 나설 결심을 했다.
5일 새벽 혼자서 마지막 캠프를 떠난 남대장은 남서릉을 따라오르다 서벽의 불거진 빙하에 붙었다. 그리고 11시경부터 가파른 정상 설벽에 스탭을 만들면서 올라 12시 30분 넓은 정상에 도착했다. 아마다블람에 대한 동계초등정과 단독초등정이 함께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다음날 새벽 6시 나머지 김, 임 두 대원이 다시 정상공격을 시도 12시에 정상에 도달했다. 이 등정으로 한국대는 대원 전원이 등정에 성공하는 또 하나의 기록을 세웠다.

괴봉 쟈누에서도 동계초등정 이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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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합동 쟈누봉원정대

안나푸르나 등정과 함께 84년 겨울을 화려하게 장식한 것은 쟈누봉 동계초등정이었다. 전국에서 합동으로 구성된 쟈누원정대는 ‘스핑크스’ 또는 ‘잠자는 사자’라 불리는 히말라야의 괴봉 쟈누(Jannu·7,710m)봉 겨울철 첫 등정을 이룩해 주목을 받았다.
이 원정은 82년 닐기리 중앙봉을 등정한 바 있는 김기혁(31.하켄클럽·양정산악회)대장의 지휘아래 전국 각지에서 자원한 최성수(29), 김동재(25), 신교봉(24), 박정식(23.이상 하켄클럽), 송정두(27·거리산악회), 서성수(26·부산솔뫼), 박성만(25·울산산악회), 안신현(22·부산대륙산악회)대원 등 9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경비 절감을 위해 단지 1명의 셀파와 1명의 고소포터만을 고용해 등반에 나섰다.
모든 짐 수송과 루트공작을 대원 스스로가 하는 소위 ‘멤버 클라이밍’으로 밀어붙인 끝에 12월 6일 7,100미터 지점에 마지막 캠프를 설치하고 다음날 1차 정상공격에 나섰다. 그러나 송정두, 박성만, 신교봉과 두 명의 셀파가 나선 이날 공격은 길을 잘못 들어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12월 9일 이번에는 김기혁대장이 직접 나서 두 명의 셀파와 함께 두 번째 정상공격을 시도, 오후 2시 40분에 드디어 정상에 섰다. 카라반이 길고 난이도가 높아 동계등반이 전혀 시도되지 않았던 쟈누봉이 한국산악인에 의해 첫 등정된 것이다.



두 번째 한국 에베레스트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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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산악회 에베레스트 동계원정대

한편 84년 겨울시즌 3개의 한국대 중에서 가장 의욕적으로 출발한 양정산악회의 에베레스트 동계원정대는 77년 고상돈의 에베레스트 등정 이후 7년 만에 다시 시도되는 원정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특히 국내 유일의 에베레스트 등정자인 고상돈대원이 이듬해 매킨리에서 사망했기 때문에 생존한 등정자가 없는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가장 이슈가 될 만한 원정이었다.

이 원정대는 오인환(36)대장을 위시해서 정기범부대장(34), 남선우등반대장(29), 심상돈(30), 전석훈(29), 장석창(29), 임병길(29), 김백수(27), 이승민(25), 석채언(23) 등 양정고산악부 출신들로 구성된 대원진과 한국방송공사에서 파견한 민상기(36), 정성근(29), 백승민 기자(28)를 포함하여 13명으로 구성되었다.
11월 17일부터 등반을 개시한 이들은 일주일 만에 아이스폴을 뚫고 1캠프(6,050m)를 설치했고 26일에는 2캠프(6,400m)를 건설했다. 그리고 베이스캠프에서 3일간 휴식을 취한 후 12월 1일부터 다시 등반을 속개, 13일에는 3캠프(7,300m)까지 올랐다.
그러나 이 원정대는 12월 16일 모처럼 좋은 날씨를 셀파들의 파업으로 놓치고 사우스 콜을 목전에 두고 강풍과 추위를 견디다 못해 후퇴하고 말았다. 이들이 도달한 최고 고도는 7,900미터였다.

 
한국원정사 1985~1986

겨울 에베레스트에서 한국 3팀 각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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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동계에베레스트 서릉원정대

가장 먼저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팀은 김기혁(31·하켄클럽, 양정산악회)대장이 이끄는 서릉 원정대였다. 84년 캉첸중가 산군의 쟈누(7,710m)봉을 동계 초등정한 바 있는 김기혁대장은 그 여세를 몰아 에베레스트에 도전장을 냈다.
전국에서 희망자를 선발해 조직한 이 등반대는 김대장을 중심으로 조동혁부대장(33·양정산악회), 임삼균(28·대전쟈일클럽), 박계현(27·경남동악회), 정용선(27·제주오현등고회), 김영환(27·대전쟈일클럽), 서성수(27·부산뫼우리산악회), 이재하(27·악우회), 유의선(27·대전클라이머스), 최태수(26·충남고OB), 박성만(26·울산산악회), 이상헌(26·부산뫼우리산악회), 안일섭(26·인덕산악회), 박정식(24·양정산악회), 이상구(23·인천교대산악회), 위용범대원(21·하켄클럽)대원 등 모두 16명으로 구성된 대부대였다.
에베레스트 서릉 동계등반은 80년 영국대가 최초로 시도했으나 패퇴하였고 82, 84년에 프랑스대가 공략했으나 역시 뜻을 이루지 못한 채로 남아 있었다. 그만큼 서릉은 난이도가 높을 뿐더러 겨울철에는 강력한 제트기류에 노출되는 지형이라서 등반이 극도로 곤란한 곳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한국대는 11월 30일 서릉의 첫 번째 관문인 수직벽을 돌파하고 로-라(6,050m)라 불리는 안부 위에 제1캠프를 설치했다. 이곳에서 두 번째 캠프까지는 고도 900여 미터의 암설벽을 올라야 하는 난코스였으나 대원들은 3명의 셀파들과 함께 6일간의 작업끝에 12월 5일 2캠프(6,950m)를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8일부터는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거센 바람이 불어닥쳐 아래 캠프로 피신해야 했고, 급기야 그곳마저도 강풍으로 텐트가 찢겨나가자 12월 15일 전원 베이스캠프로 후퇴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텐트를 포함한 많은 장비와 식량이 유실되어 더이상 등반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이로써 서릉에 대한 한국대의 첫 도전은 등반 개시 21일 만에 막을 내렸다.

서울올림픽 폐막일 에베레스트와 로체 동시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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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산악연맹 에베레스트-로체원정대

88년의 원정대 중에서 가장 많은 등정자를 배출한 팀은 단연 대한산악연맹의 에베레스트-로체원정대였다. 21명이란 대규모 인원으로 구성되었던 이 원정대는 세계 최고봉과 4위봉에 무려 10명의 대원을 올림으로써 88년 최대 성과를 올렸다.

이 원정대는 김인식단장(53)을 비롯 최창민대장(45), 장봉완부대장(36), 남선우등반대장(33), 조대행(42·닥터), 정호진(34), 권순호(30), 송열헌(29), 김창선(28), 엄홍길(28), 정승권(28), 전재범(26), 이의재(25), 장병호(27), 이의현(27), 임형칠(29), 이현용(31), 박쾌돈(26), 신영호(26), 박희동(25), 김명환대원(24) 등 전국에서 선발된 대원 21명으로 구성되었다.
쿰부빙하 5,400미터 지점에 베이스캠프를 건설한 원정대는 8월 29일 등반을 개시해 9월 15일에는 에베레스트의 남릉 말단부에 세 번째 캠프(7,250m)를 설치했다. 이곳은 60도가량의 빙설지대로 특수 제작한 박스 텐트 두 동이 가설되었다. 그리고 19일에는 8,050미터 지점에 네 번째 캠프가 설치되고 1차 정상공격조로 남선우, 김창선, 엄홍길대원과 두 셀파가 선발되었다. 이곳부터는 노멀루트인 남동릉으로 우회하여 오르기로 되어 있었다.
9월 26일 새벽 2시 30분 추석달이 유난히도 밝게 비추는 가운데 김, 엄대원과 셀파들이 마지막 캠프를 떠났다. 남대장이 등정을 포기했기 때문에 4명으로 줄어든 일행은 깊은 눈을 헤치며 남봉으로 향했다. 이들은 남봉 근처에서 뒤따라 오르던 프랑스 대원과 셀파 등 7명과 합류해 번갈아 가며 러셀을 한 끝에 오후 2시 30분 드디어 정상에 도달했다. 10명이란 인원이 한꺼번에 최고봉 정상에 서게 된 것이다.
1차 공격이 성공리에 끝나자 이번에는 3명의 대원으로만 구성된 2차 공격조가 선발되었다. 그리하여 장부대장과 정승권, 장병호대원은 9월 29일 새벽 3시 40분 마지막 캠프를 떠나 6시간 20분 만인 오전 10시에 또다시 최고봉 정상을 밟았다.
2차 등정까지 끝나자 한국대는 마지막 과제인 로체봉 등정을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등정조는 정호진, 임형칠, 박쾌돈, 박희동 등 4명의 대원이었다. 여기에 남선우등반대장이 에베레스트를 단독으로 오르기로 계획을 세우고 올림픽 폐막일인 10월 2일을 디데이로 잡았다.
드디어 10월 2일 새벽 각 캠프를 떠난 에베레스트와 로체 공격조들은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그로부터 7시간 뒤인 9시에 로체봉팀이 먼저 정상에 섰고 에베레스트에 단독으로 나선 남대장은 10시 20분에 지구의 용마루를 밟았다.
대산련팀의 에베레스트-로체 연속, 동시등정은 한국대가 그간 히말라야에서 행한 극지법등반 중에서 가장 모범적이면서 큰 성과로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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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에베레스트 남서벽원정대

한국산악인에게 네 번의 실패를 안겨준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다섯 번째 도전장을 던진 팀은 전국합동원정대였다. 한국산악회 이사인 이강오대장(48)과 정우섭부대장(44)이 대부분의 경비를 부담함으로써 성사된 이 원정대는 남선우등반대장(36)이 중심이 되어 허정식(36), 정광식(35), 최태식(31), 조광제(29), 이상록(29), 박영석(28), 김진성(27), 구경모(27), 김석준대원(25) 등 모두 12명이 참가했다.

4월 1일 쿰부빙하에 들어온 원정대는 5일에는 제1캠프, 7일에는 6,450미터 지점에 2캠프를 설치하고 전진 베이스캠프로 삼았다.
이어서 본격적으로 남서벽 공략에 나선 이들은 15일에 세 번째 캠프 예정지(6,950m)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4캠프를 향해 루트공작을 시도하던 박영석 대원이 강풍에 균형을 잃고 100여 미터를 추락, 안면 골절상을 입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등반은 그가 헬기로 후송되던 18일까지 중단되었다.
박대원의 사고로 침체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대원들은 루트공작을 계속해 4월 23일에는 7,600미터 지점에 4캠프를 설치했다. 이어서 28일에는 5캠프 지점(8,300m)까지 고정로프를 설치한 뒤 정상공격조로 남선우등반대장과 김진성대원, 그리고 앙체링셀파를 결정했다.
4월 30일 2캠프를 떠난 공격조는 하루에 4캠프까지 올랐고, 다음날 5캠프 지점까지 올랐으나 그곳에는 텐트칠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일행중 셀파는 등반을 포기하고 내려가버렸고 두 대원은 하켄에 확보된 채로 텐트를 뒤집어쓰고 비박을 감행했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까지 버티던 두 대원은 이미 기력이 쇄진해버렸다. 눈이 녹으면 다시 올라올 것에 대비해서 산소통과 침낭 등을 두고 내려왔으나 등반은 그것으로 끝났다. 그들이 2캠프까지 내려왔을 때에는 날씨가 매우 나빠지고 있었고 대원들은 몹시 지쳐 등반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이로써 에베레스트 남서벽은 여전히 한국산악인들에게 큰 과제로 남게 되었다.

초오유-시샤팡마 연속등정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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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오유-시샤팡마원정대

92년은 한국과 중국이 공식적으로 수교한 원년으로 울산과 서울산악인이 합동으로 티베트의 고봉 초오유(8,201m)와 시샤팡마(8,027m)를 연속 등정하기 위해 출사표를 던졌다.
전년도에 이어 중국정부의 허가를 받아 티베트로 공식 입산한 한국대는 먼저 초오유 공략에 나섰다. 김관준대장(54)을 비롯, 신영호부대장(42), 남선우등반대장(38), 신영철(42), 김영태(29), 손경득(29), 조상현(27), 남기칠대원(26) 등 8명의 한국대는 울산의 청산악우회와 서울의 중앙대, 양정산악회 소속 회원들이 합동으로 참여한 원정대였다.

▲ 92년 9월 20일 초오유 정상에 도착한 남선우(오른쪽), 김영태. 사실상 이 산의 국내 최초 등정이었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육로로 티베트로 들어간 한국대는 9월 4일 초오유 베이스캠프(4,900m)에 도착했다. 3일 뒤 다시 전진베이스캠프(5,700m)를 구축한 이들은 9일에 제1캠프(6,400m), 12일에 2캠프(6,950m), 그리고 16일에는 록밴드에 3캠프(7,500m) 설치를 마쳤다.
9월 20일에는 남선우등반대장과 김영태대원이 셀파 1명과 함께 새벽 4시 10분, 3캠프를 떠나 7시간 만인 11시 25분에 초오유의 넓은 정상에 섰다. 공식적으로는 국내 두 번째 초오유 등정이었다.
초오유 등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원정대는 9월 26일 시샤팡마 베이스캠프(5,000m)로 이동했다.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남선우, 김영태, 남기칠, 조상현 등 4명의 대원과 셀파 1명만이 입산허가를 받아 등반을 개시했다.
이미 고소적응이 되어 있던 이들은 28일 전진베이스캠프(5,500m)를 설치하고 다음날부터 알파인스타일로 시샤팡마를 공략, 4일 만인 10월 2일 오전 11시 20분 남선우, 김영태조와 셀파 1명이 마침내 시샤팡마 정상에 섰다

허영호, 에베레스트 남북 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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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얀클럽 초모랑마원정대

이들 중 가장 먼저 낭보를 보내온 팀은 히말라얀클럽팀이었다. 한국 최초로 최고봉 북쪽 루트로 도전한 이 팀은 고인경단장(50·파고다 외국어학원장)이 사재를 털어 꾸린 원정대로 오인환대장(47)을 포함 성순제부대장(47·변호사), 허영호등반대장(39), 김범택(30), 조재철(27), 홍성택대원(27) 등 6명으로 구성되었다.
결과는 허영호등반대장과 나티셀파가 4월 13일 정상에 올랐다가 남동릉으로 하산해 두 번째 에베레스트 종단기록을 수립했다. 허대장과 셀파는 새벽 8,300미터의 비박지를 출발, 산소를 사용하며 7시간 20분을 오른 끝에 오후 1시 20분 정상에 도달했다. 이것은 프레몬순기 등반사상 가장 빠른 기일 등정이란 새기록이 수립되는 순간이었다. 이 등정으로 허영호는 2회의 에베레스트 등정기록을 갖게 되었다.
정상에서 두 사람은 올라온 북면루트로 내려가는 것보다 많은 팀이 있는 남면루트로 내려가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 남동릉으로 하산길을 잡았다. 이미 산소가 바닥나 기력이 다 떨어진 이들은 남봉 밑 8,600미터 지점에서 더 내려가지 못하고 비박을 해야만 했다. 다음날 두사람은 거의 탈진 상태에서 한국의 여성원정대 제3캠프에 도달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모험적인 북-남 종단등반이 마무리 되었다. 이 등반은 88년 봄 일본-네팔-중국합동대가 수립한 남-북 교차 등반 이후 두 번째로 기록되었는데 지원을 받지 않은 첫번째 기록이다. (사진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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