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푸모리 동계 등반 (남선우 회원 등정)

by 김근생 posted May 1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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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년 12월 11일 푸모리(7,145m) 정상에 오른 남선우. 단 두명으로 구성된 이 원정대의 등정은 한국 최초의 히말라야 동계 등반에서 얻어낸 성과였다.▲▲▲▲▲▲▲▲▲▲▲▲▲


한국 푸모리 동계원정대

82년도에는 6개의 원정대가 제각기 새로운 기록들을 수립하며 100퍼센트의 성공율을 보였는데 국내 최초로 동계 히말라야원정대가 등장해 주목을 받았다.
히말라야에서의 동계등반은 80년 2월 17일 폴란드대가 에베레스트를 등정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을 타고 국내에서 처음으로 동계원정을 계획한 것은 이해 봄시즌 마칼루 원정에 참가했었던 남선우(27·중앙대, 양정산악회)였다. 그는 마칼루에서 돌아온 즉시 네팔관광성에 푸모리(7,145m)봉에 대한 입산신청을 해서 허가를 받아놓았다.

82년 10월 말 이 산의 남릉에 대한 동계초등을 목표로 떠난 한국대는 원정대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등반대였다. 이 원정을 주도한 남선우대장과 이현수대원(27·은벽산악회)이 대원의 전부였다. 불과 500여 만원의 경비로 원정대를 꾸린 이들은 셀파도 단 2명에 불과 18명의 포터를 고용했다.

동계의 등반 개시일은 12월 1일로 되어 있으나 이들은 11월 23일부터 루트공작에 들어가 28일에 첫번째 캠프(5,950m)를 완료했다. 그리고 6일간의 작업끝에 청빙지대를 통과, 남릉의 암봉 위로 올라서 6,400미터에 있는 비좁은 안부에 2인용 텐트를 설치했다.

여기서 남대장은 세 번째 캠프를 생략하고 정상공격에 나설 것을 결심했다. 이곳에서 정상까지의 고도는 약 7백미터, 설릉으로 이루어진 이 구간을 두 명이 알파인스타일로 등반하면 시간상으로 가능하리란 판단에서였다.

12월 11일 새벽 6시, 남대장과 락파겔젠 셀파는 2캠프를 떠나 정상공격에 나섰다. 두 사람은 거센 겨울바람을 헤치며 가파른 정상 설릉에 붙었다. 그러나 설릉은 예상 외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많은 시간을 빼앗기며 정상에 다다른 시각은 오후 4시 12분. 엄청난 바람으로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었다. 이미 마지막 캠프로 돌아가기에는 늦은 시간이었다.

두 사람이 서둘러 서로 확보해 주며 하강했으나 6800미터 지점의 설릉에 이르렀을 때는 날이 아주 어두워져 비박을 감행했다.
82년의 마지막을 장식한 한국 최초의 히말라야 동계등정은 국내산악계에 또다른 영역의 원정 가능성을 제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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