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배 등반대회 를 마치고 2003년 2005년 글 퍼옴.....

by 우석희 posted Jun 09, 2007 Views 761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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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배 등반대회.  2005년 글 펌..

생소하게만 느껴지던 등반대회를 어떻게 준비를 하고 어떻게 하고 왔는지 돌이켜 생각해보면
너무 부족하고 너무 배울것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고 왔습니다.

이번 대회장이 포항인 관계로 선수와 임원진들은 종로5가에서 11시에 출발을 했다.
좁은 버스안에서 벼락치기 공부도 하고 불편하지만 대회를 위해 몸을 구겨서 잠도 청해야 했다.
(투명인간 형님 잠좀 잡시다.. ㅋㅋㅋ)
생각보다 일찍 도착을 하여 아침 식사시간까지 차에서 자는둥 마는둥 대회에 대한 걱정으로 바둥거려야 했고
아침식사를 마치고 선수등록을 시작하였다.
참가번호를 받아들고 가슴에 달며 드디어 말로만 하던 대회에 참가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은 이론시험 부터 시작되었다...
에고 에고 시험은 정말 싫어~~~~
시험을 마치고 바로 암벽등반과 독도법이 시작 되었다.
시간 관계상 팀원4명중 2명은 암벽   2명은 독도법을 하게 되었다.
할리와 할리 선배는  암벽을 가고  나와 투명인간형님은 독도법을 하게 되었다.
할리는 장비준비해서 암벽대회장으로 가고 우리는 독도법 출발을 기다리는데...  참가번호가 일반부 뒤에서 두번째라서
지루하게 기다려야 했다..  
우리는 맨뒤에 한팀을 남겨놓고 출발을 했다...
천천히 침착하게 하자고 생각을 했는데 이건 독도법을 과장한 산악 마라톤이였다..
모두들 뛰어서 다닌다 이 상황에서는 걸어 다닌다는것이 더 이상하게만 느껴 질꺼 같았다..
포인트 하나 하나 찍어가면서 점점 숨은 목에 차 오르고..
망친 이론시험을 생각하며 오기로 더 뛰어 댕겼다...
결과는 모든지점 다 찍고 몇팀을 앞서서 들어왔다..
스스로 매우 자랑스러웠다..  
점심 시간을 알리는데 암벽대회장에 올라간 할리가 안내려온다. 다른팀은 다들 내려오는데....
투명인간 형님과 같이 암벽대회장으로 응원하로 올라갔다..
대회장에 도착하니 준비를 다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화이팅을 크게 외치고 대회장으로 사라지는 뒷모습만 봤다..
출발을 외치는 목소리를 듣고 돌아서는데 완료를 외친다.....  할리 ㅋㅋㅋ 역시 기대이상 이야~~~
우리는 대회장으로 돌아와 행동식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장비점검이 시작되었다....  와~~  우리는 놀랍기만 하다~~
따른팀들의 준비를 보니 이건 장난이 아니다.....
물론 우리가 준비를 못했다는 말은 아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 했고 거기다 우리는 대회 경험이 크게 힘이 되었다.
펼처놓은 장비는 그냥 두고 응급조치를 하였다...
매번우리는 번호가 끝쪽인 관계로 지루하게 기다림에 지쳐만 간다....
응급조치 시험은 실기로 이루어 졌으며 인공호흡법과 삼각끈 사용법 일반상식등으로 시험은 이루어 졌다.
준비가 안된 나만 ㅋㅋㅋ 어깨가 탈골된 환자였다.....  
응급조치가 끝나고 나오니 따른팀은 벌써 막영준비가 다 끝났다.. ㅜ.ㅜ  
하지만 대회경험이 많은 할리와 할리선배는  늦었지만 거의 따른팀과 비슷하게 텐트를 치고 저녁식사를 마칠수가 있었다,
저녁을 마치고 친교의 시간이 되었다....(친교를 가장한 막영준비에 대한 시험이다)
친교의 시간은 화끈했다....  전국의 모든팀의 경쟁이 볼만했다...
할리의 난리 부르스~~ ㅋㅋㅋ  정신없이 웃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중에 영웅호걸형님이 응원차 오셨다..
먼 포항에서 호걸형님을 볼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형님덕에  한잔도 하고~~  ㅋㅋㅋ 너무 좋았다..(호걸형님이랑 한잔해야 하는데 넘 아쉬웠다....)
친교의 시간의 하이라이트는  캠프파이어~~와   불꽃쑈~~  넘 멋지다..
우리는 텐트안에서 넘치는 줄잔에~~~ 사나이정이~~~ ㅋㅋㅋ
넘치는 술잔으로 다들 골아떨어져서 각자 탱크를 몰고 전쟁들을 했다.....
자다 소변이 마려워~~  더듬 더듬 텐트밖으로 기어나와 보니 켐프파이어의 재가 꺼지지 않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안된거 같았다..
하늘을 보니 별들이 총총~~    음~~ 대회만 아니면 한참을 더 있고 싶었지만 대회를 위해서 텐트로 다시 더듬거리며
내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다시 자 볼려고 누으니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  쉽게 잠들수가 없었다.
코펠 부딛히는 소리에 잠을깨보니   이쁜 할리가 아침을 준비한다......  메뉴는 사골우거지떡국
오늘은 땀을 빼야하니깐 짜게 끓였단다....
우리는 텐트를 걷고 아침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면서 주변을 돌아보니 텐트를 걷은팀은 우리팀 뿐이다...
할리왈~~ 다 이유가 있단다.....  
오늘은 산행과 체력테스트 두가지를 측정한다
팀당 베낭의 무게는 60킬로  저울을 가지고 짐을 넣고 빼고를 수차례~~~
개인당 18킬로 정도로 맞췄다..
텐트를 걷은 결과는 우리가 맨처음오로 출발을 할수 있었다.
대회운영위원이 산행코스는 매우 쉽다고 한다.. 2시간반정도 걸린다고...  3시간내에 들어와야 한다고..
아마도 맨몸으로 걸어서 2시간30분이 걸린거 같다.....
어느 정도 오르니 깔딱 고개가 계속 이어진다....  베낭의 하중이 자꾸 눌러 내리지만
굵은 땀을 흘리며 전진 앞으로 전진이다....
우리 뒤에는 강원도 여자대학팀이 뒤를 쪼차오며 호흡을 맞춰준다.
산을 다니고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좋지만  강원도 대학팀은 그 이상을 넘어섰다..
결과는 산행1등으로 맞췄고 강원도팀이 2등 ㅎㅎㅎ
이제 마지막 체력테스트  2킬로 뜀박질만 남았다...
걱정이 많았다 무거운 베낭을 메고 어떻게 뛸까~~
하지만 사람은 쳐하면 다 한다...  ㅋㅋㅋ
예상을 뒤업고 뒤에 강원도 팀이 우리를 따라잡고 우리는 두번째로 들어갔다..
모든것은 끝났다.....
힘도 들고 아쉽고 담 대회에 다시 도전하고 싶은 오기도 생겼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서울로~~~ 서울로~~~~  왜냐구~~  우린 서울팀이니깐 ㅋㅋㅋ

응원해주신 모든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찐한 팀원의 정을 느낄수 있던 대회였다...
내년에 다시한번 출전합니다.....

2005년 글 펌...........


대통령기 등산대회 후기

2. 집결 및 출발지와 시간 : 동진 집결, 8:00. 출발 22:00

대통령배 후기

1. 들어가며
지난 11월 9일부터 10일까지 광주 조선대 대운동장에서 제35기 대통령기 등반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산악회는 3개팀을 구성, 서울시를 대표하여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2회 연속 참가하는 대회이었으며 팀 자체의 성과도 있었지만 많은 부분에서 미흡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에 먼저 이번 대회에 대한 평가와 차기 대통령기에 대한 준비의 목적으로 간략하게 기록을 남깁니다. 피같이 붉은 산수유를 수확하는 계절, 이곳은 전라도 지리산 자락에서 처음 산을 느끼던 본인의 고향집입니다.

2. 준비과정
대통령배를 준비한 기간은 매우 짧았습니다. 2주전까지 팀 자체의 연례행사인 장애우 등반대회를 감동의 순간으로 마무리 하고 다소 지친 몸과 마음으로 또 다른 행사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대회 출전 3개팀을 구성하고 장비확보를 시작으로 대회 운행과 여러 등산과목을 학습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또한 각 대원들의 상이한 스케줄을 통일시키며 팀웍을 만들어 내는 2주간의 훈련은 하루 하루가 새로운 날들이었습니다.
일반 산악회 한 팀에서 3개팀을 출전 시키는 것은 팀의 역사와 경험 그리고 회원의 저변이 확보되지 않으면 자칫 팀의 구심력을 약화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평소의 산행에서 대회를 의식한 부담을 가질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철저한 자기관리와 팀웍을 중심으로 한 전문적 등반이 축적되면 대통령기라는 대회의 준비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장비점검을 하기 위해서는 미리 장비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으나 출발하는 당일까지 완벽한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 같고, 그러다 보니 여성팀과 대학팀등 각 팀들이 준비하지 못한 것을 서로 신경 쓰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해야 했습니다. 결국 팀별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은 단순히 전체를 무시하기 때문이 아니라 팀별 체제로 운행되는 산행을 위한 하나의 전초단계였다고 보입니다.

대략 준비기간을 계산하면 10월 23일부터 11월 8일까지 약 보름의 기간이었습니다. 동 기간 중 준비와 훈련을 목적으로 모였던 횟수는 주중 3번 가량 이었으며 , 주말 도봉산 어텍캠프에서 2차례 훈련이 있었습니다. 초보자가 많은 관계로 1차 훈련에서는 기본적인 메듭법, 막영구 설치방법 등을 훈련하였으며, 2차 훈련에서는 장배진열 및 막영구 설치 등 실전대회의 시뮬레이션을 연출하였습니다.
대회 이후 막영구 설치는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그래도 미흡했던 부분을 대원들 사이에서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텐트의 후라이와 본체의 간격이 전체 텐트에 균일하고 튼튼하게 유지되어야 하며 비 바람과 폭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탄력 있는 확보수단을 사용하여 지면에 튼튼하게 고정시켜야 합니다. 탄력 없는 줄을 이용하여 학보를 하면 강한 바람에 텐트가 파손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평소에 충분히 연습할 수 있었던 것이었기 때문에 다음부터 가급적 정석에 기초한 설치를 해 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대회에 필요한 매듭법은 피셔맨, 이중피셔맨, 보올라인, 워터넛, 팔자, 이중팔자, 까베스통, 반까베스통, 균등분할법(Equalizing) 등 우리가 평소에 익히 사용하는 매듭들이지만 숙련된 손동작과 상황에 맞는 매듭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같은 매듭이라도 그 명칭이 많은 부분 상이하기 때문에 등산교재에서 소개된 공통적인 명칭으로 통일시켜서 사용해야 합니다.


대회 이후 막영구를 설치함에 있어, 막영구도 확보가 필요하고, 먼저 텐트를 기준선에 맞추어 펙으로 바닥을 고정시킨 후 폴을 끼운다는 것도 새로운 배움이었습니다. 또한 연료통(겨울에는 텐트와 프라이사이)은 텐트 외부에 별도의 보관장소를 만들고, 쓰레기 분리수거 등 자연을 생각하는 산악인의 생활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응급처치나 독도법은 제대로 연습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준비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에 다시금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3. 대통령배 기간 (질퍽한 조선대 운동장에서~~)

우리는 11월 8일 20시경 동대문 동진레저 등산 장비점 앞에서 집결하였습니다. 22.시경 전세버스를 이용하여 광주로 출발하였고, 간단한 서울시 연맹회장님의 말씀과 강이사님, 복이사님등의 말씀을 듣고 내려가는 차 안에서 미쳐 못한 응급처치나 독도법을 연습을 하였습니다.

응급처치에서 중요한 부분은 각 골절상에 따른 붕대 감는 법, 화상 처치법, 열사병, 일사병, 응급처치단계 지혈법 등으로 여겨지며 그 중에서도 응급처치는 말 그대로 환자가 의사에게 이송되기 전까지의 Fist Aid 입니다. (분명 언급한 부분에서 문제가 나왔는데 제대로 맞춘 것이 없었다고 여겨집니다 . 무지 어려운 시험이었음)

독도법은 지도를 보는 것이 중요하지만 지도상에 현위치를 파악하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일 것이며, 이를 위해서 나침반 사용법등을 숙지해야 합니다. 평소에 도봉산 지도를 놓고 고민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만 있었어도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암벽도 제대로 못하니 부족한 머리로 평소 독도법까지 신경 쓰지 못했던 본인에 대한 반성을 합니다.)

11. 9. 03;00경 광주 조선대 대운동장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운동장에는 광주연맹에서 설치해 놓은 3동의 천막만 있었고 아무도 없었지요. 운동장은 비가 온 후 배수가 되지 않는 관계로 상태가 좋지 않았으나 그래도 좋은 사이트를 차지할 요령으로 먼저 텐트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배운 바대로 아주 예쁘게(폴이 약간 짧다는 텐트의 문제점이 있으니 아마도 이 부분은 고쳐야 하지 않을 까 싶습니다)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동이 터올 무렵 06시경 간단히 아침식사를 했지요. 그런데 다른 팀들은 08시가 될 무렵 도착해서 막영구 설치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대회 주체측은 우리팀 전원이 텐트를 잘 못된 곳에 쳤다고 하더군요. 무척 난감했습니다. 저도 빛 고을 혁명의 고향 광주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왔지만. 어떻게 대회관계자가 한명도 남아 있지 않았는가, 위치를 미리 파악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해야 하지 않았는가,라고 관계자에게 항의하자 대회 운영자 왈 '잘 못했으니 무팍꿀고 빌까요'라고 더 세게 나오는 것을 보는 순간 저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옮겼죠. 그리고 장비점검을 받기 위해 준비를 했습니다.

09:20경 필기시험에 참가, 약20분간 20문제를 풀었습니다. 대체로 상식으로 풀 수 있는 문제였으며 대한산악연맹에서 발간한 ‘등산’ 교재에서 출제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외의 산악인으로 알아야 하는 상식이지만 일반인은 무척 생소하다고 느낄 수 있는 문제들은 출제자의 고민을 엿보게 했습니다. (광주 무등산의 높이는 산행정보로서 알고 있어야 했으며 최초 인류가 8,000미터급으로 등반한 곳은 안나프르나 이었더군요.)
이런 부분들은 가끔 화장실에서 볼일 볼 때 산에 관한 책을 읽어서 해결할 수 있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관심 있게 보는 사람이 있을까요?

약1시간 정도에 걸쳐 시험을 보고 나서 다시 장비를 배열하기 시작했습니다.
장비의 종류와 양은 저희 팀이 가장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장비를 일목요연하게 점검 받기 편하도록 미적 배열까지 신경 쓰며 정리하는 것은 많은 연습을 했어도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준비 일정상 대회 출전 전날 다급하게 준비한 식량은 지적 대상으로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운행계획서에 맞추어 준비는 했으나 비상식을 개별 대원별로 별도 포장하지 아니한 점은 감점 요인으로 인정해야 했습니다. 모든 장비는 필요에 맞게 구비되어 있어야 하며 관리상태와 사용법 또한 충분히 숙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의류는 모두 방수포장을 해야 하며 수선구도 같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장비점검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사항으로 각자 착용하고 있는 의복과 소지품 검사 같은 것들도 수시로 이루어집니다. 항상 단정하고 준비된 모습을 확인하고자 하는 심판의 의도라고 생각합니다.


대략적으로 1시간뒤인 12시분터 1시간동안 식사시간이 주어졌습니다. 문제는 이곳에도 있었지요. 실제 우리가 산행에서 식사시간은 많게는 준비만 1시간정도 걸리다 보니 우리가 산행계획서에 따른 준비를 하려고 보면 1시간이 넘게 걸릴 것 같고, 라면 등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것은 규정에 어긋났기 때문에 결국 제대로 식사도 못하고 다음시합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간혹 자장면을 배달시켜 먹거나 김밥을 물고 다니는 상식 밖의 팀들도 있는 것을 보면 대회가 더욱 성숙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다음에는 가급적 주어진 시간 내에 식사를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여 산행계획서를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즉 청결미를 준비하여 쌀 씻는 시간을 없애고 반찬 등도 바로 해결할 수 있도록 식단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것은 각 팀의 경험과 노하우에 따라 차별화 되는 것 같습니다.

식사 전 응급처치 시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응급처치를 해 본 사람이 없고, 제대로 숙달도 되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자신이 없었습니다. 당시 문제는 저에게 응급상황판단 4단계, 응급처치 3단계, 지혈법 3가지 등을 말로 하는 것 이었고, 두 명은 팔 골절 응급처지로 삼각건 메는 법, 그리고 한명은 발목을 삐었을 때 붕대 묶는 법 등을 물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저의 말로 때우려던 계획은 허망하게 실패로 끝났습니다.

14시경 독돕법에 2명이 가고, 나머지 2명은 암벽등반과 메듭법에 참여를 했습니다.. 독도법은 1,000분의 1지도를 사용하여서 그런지 문제가 아주 쉬웠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뛰기만 했지요. 실제 다른 대회에서는 칼라 지도를 주고 실시하므로 매우 어렵다고 들었는데 주최측의 배려(?)인지 지도를 보지 않고도 대충 찾을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암벽등반은 듣기로 인공 암벽이었다고 합니다. 인공암벽은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동호형의 자백 : 자신이 킥도르의 방향을 고려해야 했는데 함정에 결려 들었다고 함 다음 시합에서 참작하기 바람)

독도법이 끝나고 바로 텐트로 돌아와 대충 정리됐던 장비나 베낭을 정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비상탈출구는 절대 막으면 안되고 베낭은 둘은 텐트와 프라이 사이, 나머지는 텐트안, 그리고 식량과 연료통은 텐트와 프라이사이(앞쪽) 기타 물건은 모두 베낭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첫날 대회를 종결했습니다. 17시경 대회 개회식에 참여 했지요. 이후 저녁식사와 산악인 잔치마당이 있었습니다. 각지 산악인들의 장기자랑에 시간은 유쾌했고 빨리 지나갔습니다. 그 동안에 막영에 대한 심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하여 잘 했다는 말도 들었지만. 실제 우리가 잘 했는지 여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상으로 11. 9. 하루를 보내고, 10시경 들어와 저는 취침에 들어 갔습니다. 석현호 대원은 무척 추웠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광주날씨는 차가웠습니다. 현호야 침낭 사러 가자!

둘째 날은 대략 06시경에서 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그보다 일찍 일어나 식사준비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이며 이때도 충분히 음식을 섭취하여 운행테스트를 준비해야 합니다.

07:00경 산악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경기는 07:00부터 시작이었으나, 우리는 좀 늦었습니다. 코스는 바로 조선대 뒤쪽 방향으로 점심식사 전까지 운행이 계속됩니다. 운행은 4인이 공히 팀웍을 맞추어 움직여야 하며 주로 능선을 따라 다니는 평이한 워킹코스 였습니다. 최종 2.3킬로미터전까지 산행을 하는 것으로 그렇게 시간에 구애될 필요는 없었습니다. 다만 베낭 무게를 4명이 합하여 60킬로로 유지해야 하며 운행 도중 행동식 흔적과 비상식, 여분의 물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점, 등으로 이 정도의 룰만 지켜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식사후 출반 전까지 가급적 베낭을 잘 꾸려 두고, 복장은 가볍게 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중간에 베낭을 다시 점검하고 옷가지를 정리하면 시간을 많이 낭비하게 됩니다. 그리고 운행 도중에 충분히 행동식을 섭취해야 합니다. 또한 중간 각 통가 지점마다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첫번째 문제가 산(1,800미터)꼭대기에서 알몸의 사람이 느끼는 체감온도(이때 평지온도는 30도) 우리의 답은 옷도 없어 무지 춥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6.8도의 체감온도라고 합니다. 어렵더군요. 두 번째 문제는 독도법, 즉 지산 유원지 꼭대기 팔각정에서 보는 능선과 계곡, 그리고 자기위치 등을 파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3개의 포스트를 통과하고 마지막 체력테스트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여러 팀들이 정체된 관계로 약1시간정도 휴식을 취할 수 있었으며 2.3킬로미터를 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팀, 남성팀, 그리고 여성팀 순으로 열심히 뛰었죠.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하면서. 여성팀도 잘 뛰었고 마지막까지 팀웍을 잃지 않고 힘든 과정을 끝내는 모습은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골인을 하게 되면 베낭 무게를 점검합니다. 그리고 비상식 점검과 쓰레기 수거 상태 등 마지막 순간 까지 방심할 수 없더군요.

그렇게 해서 우리는 경기를 마쳤고, 각 장비를 회수한 후 폐회식에 참여했습니다.(마치 정치 유세장 같다는 생각을 했음) 우리는 아쉬운 점수차로 입상을 못했지만 많은 것을 얻기도 하였고 대통령기 대회를 통해 많은 문제점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폐회식후 간단히 식사를 하고 나서 장비를 모두 회수하여 서울로 출발한 시간은 대략 18시경 이었으며 서울에 도착하니 무려 01:30분경 이었습니다.

3. 감상

이상과 같이 우리는 서울시대표로 대통령배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뭐가 뭔지도 모르고 참여하게 되었지만. 그런 과정에서 찾은 것이 있다면 참여의식만 가지고 들어 갔지만 많은 부분을 산행과정에서 보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위의 곡예사로서가 아닌 자연과 사람을 사랑하는 순수한 산악인의 자세에 대해 다시 한번 자문해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팀웍의 중요성, 실현 가능한 것을 계획하고 그 계획에 따른 실천이 있어야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이 가능할 것입니다.


35회 대통령기 등산대회 감상문

작성자: 석현호

장애인 등반대회 이후 2주간의 짧은 훈련과 1박3일의 짜릿한 여정에 다들 나름의 평가와 감상이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은 산행일지의 형식을 빌어 12명의 선수와 스텝들 중 한명이었던 저의 얘기입니다.

아이들과 함께한 감격스러운 경험 뒤에 대통령기라는 올해의 마지막 행사가 기다리고 있었고 큰 행사를 연이어 치룬 다는 것은 경험 부족한 우리  식구들에게는 많은 부담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봄부터 내부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발적인 참여로 다져진 한해의 팀웍은 오히려 강한 자부심으로 표현되었고 많은 제약 속에 대통령기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1년 미만의 산행 경력자들로 구성된 팀이었지만 처음 시작은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비단 산행실력의 차이는 집중된 훈련으로 풀어 나갈 수 있었으나 급조된 팀의 팀웍은 대회 참가 순간까지 걱정이었습니다. 늘 느끼고 종종 깨우치는 사실은 자발적 희생 없이 성공적인 등반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선수도 선수가 되고 초보자도 선수가 되고 결국 선수단이 구성되었고 선수도 초보자도 아무도 모르던 막영의 기초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마치 신병 훈련소와 같이 무기를 지급하고 총쏘는 법부터 다시 배우는데, 제가 느낀 바는 그 동안 우리는 정규군이 아닌 민병대 수준이 아니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대통령기에 대한 평가는 외부적인 것보다 우리 내부적인 평가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결과에 대한 아쉬움은 많지만, 그리고 항상 외부의 소리에 더욱 민감한 것이 사람의 습성이지만 우리 내부의 성과에 기뻐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각자의 역활에 만족스러운 대원은 없을 것이며 적어도 좀더 열중하지 못한 지난 일에 미안해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회의 성격과 상징적 의미 같은 것들이 그다지 우리에게 중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난 여름 설악산 울산바위와 노적봉 탈출처럼 준비과정부터 대회 마지막까지 우리는 같은 팀이었다는 사실 만큼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은 없습니다.

마지막 체력테스트 구간, 대회 내내 걱정만 되던 여성팀이 힘들지만 끝까지 팀웍을 잃지않고 뛰는 모습은 분명 새로운 가능성이고 희망일 것입니다. 저 또한 많은 순간 팀에 대한 불만과 우려감을 갖고 있었으나 우리

한번 두드려 주지 못한 저의 소심함을 우선 반성합니다,

대회는 그렇게 끝났습니다.

새벽녘 막영구 설치부터 장비점검, 필기시험, 응급처치와 등반, 독도법, 운행,체력검정, 최종점검 까지.
잘한 부분도 있고 부족한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회 평가요소 중 아주 중요한 부분이 빠졌고 사실 우린 그 부분에서는 우승입니다.
즐거운 산행과 등산예절!! 필기시험에도 등산예절에 대한 문제는 하나도 없더군요. 내년 대회 또 누군가 우리팀에서 참가하게 된다면 필기시험 21번 문제를 하나씩 써주고 옵시다. 등산예절에 관하여.

긴 글의 대부분은 저의 감상인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