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산제 산행기

by 이종태 posted Mar 0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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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며칠 전부터 주말에 많은 비가 쏟아진다는 기상청의 예보를 이번만큼은 믿고 싶지  않았는데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정말로 시산제를 시작하기 한 시간 전부터 바람과 함께 제법 많이 내린다. 예보가 틀려도 이번에는 용서해 주려고 했는데… 슈퍼컴퓨터 괜히 사줬네. 한 겨울이 다 갔다고는 하지만 산 속에서 비를 맞으니 으슬으슬 몸이 떨려온다.  
    도선사 주차장에서 일단의 선배님들을 용암문 쪽으로 향하게 하고 서둘러 시산제 행사 장소로 향했다. 어제 저녁에 야영한 후배들과 인사를 나누고 산제지낼 장소를 택해 공중에 천막을 매달고 뒤쪽에 현수막도 설치하고 바닥에 매트깔고 그 위에 하얀 전지를 펼치고.  
     격식을 잘 알지도 못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홍동백서니 좌포우혜니 이런 고상한 진설방법은 논할 겨를도 없었다. 좀 편하게 지내고자 돼지머리 대신 큼직한 돼지 저금통에 돈  욕심에 드릴로 귓구멍, 콧구멍파고 심지어 궁딩이에도 구멍내고 했는데, 산신께서 플라스틱 쪼가리 바친다고 노하셔서 날씨가 이 모양인가. 떡집 아줌마에게 신신당부하여 준비한 맛있는 편육이 바로 옆에 있었는데… 입이 높아지셨나, 노안이신가.  
     약속한 시간에 정확히 도착했다고 득의양양하신 심종보 선배, 안주 준비됐냐고 하면서 큰 방수 천막을 옆에 끼고 오신  송익재 선배를 끝으로 제단 앞에 모두 모여 산신께 올 한해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  많은 부분을 생략하면서 약식으로 제를 올리고 본격적인 수험생활에 들어가는 신지원 군이 내년에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게 해 달라고 마지막 잔을 받쳤다. 여기저기서 덕담과 응원의 말들이 오간다.
    워낙 비상 상황이라 음복은 생각도 못하고 젊은 시절 설악산 계곡에서 잠자다 폭우를 피해 탈출하듯이 서둘러 짐을 싸서 우이동으로 하산했다. 허기 진 배를 달래며 만화상회 식당으로 내려와 동태찌개과 오뎅 전골로 언 몸을 녹이고 편육과 제사떡 막걸리 싸온 음식으로 추위에 쫄은 몸을 추스렸다. 파할 무렵 고맙게도 김인영 선배께서 자리를 함께해 주었다.
   아! 어쨌거나 이것으로 시산제를 무사히 마쳤네. 그런데 산신께서 내 소원 들어주실까? 중국 갈 때 30명은 모집이 돼야하는데. 상을 좀 더 잘 차릴걸 그랬나. 다음 주에 진짜 돼지머리 사서 다시 지낼까.
<신묘년에도 양정산악회 회원과 가족들의 안녕을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