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양정산악반가가 세상에 나오던 날
1960년 7월 4일 월요일 1교시가 끝난 후
중학교 2학년 꼬마가 교실 문을 열고서 “박 민원 형님 선생님이 오시래요.” 하며 소리친다.
장난꾸러기 반 친구들이 선생님이 누군데??? 하니까 “강 대만선생님 요.” 한다. “너 교단에 올라와서 노래 불러ㅎㅎㅎ--
안 부르면 못가ㅎㅎㅎ---너 누나 있어---!!!! ㅎㅎㅎㅎㅎㅎ”놀리고 난리다.
나는 너무 흥분돼서 한숨에 교무실로 내려갔다.
강 대만 선생님과 심 조택 선생님이 반갑게 맞으며 누런 갱지에 가리방으로 등사한
양정산악반가 악보를 주시면서 “산악반가가 드디어 다 완성이 됐다. 축하한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너무나 좋아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며 절을 5-6번은 했을 것이다.
강 대만 선생님께서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고등학교 음악실에서 점심때 산악반가를 가르칠 테니까,
점심 일찍 먹고 산악반 애들 전원을 음악실로 집합시키고 악보를 나눠 주라고 하신다.
즉시 중, 고등학교 각 학년별 반장들에게 통보하여 점심시간에 음악실에 다 모였다. 약 4-50명 정도 모였었다.
195X년 당시 선인, 만장, 우이암, 오봉, 인수하고 하산할 때 자일이나 텐트등 하루 살림살이를 등에 지고,
도봉이나 우이동에서 버스를 못타고, 버스비로 건빵과 사탕을 사 먹으면서 거의 매번 미아리 까지 걸어 나왔었다.
(30분에 1대오는 버스는 휴일 일반 등산객으로 만원이기 때문. )
석식 후, 캠프화이어 할 때, 하산 후서부터 미아리 까지 걸어서 나올 동안, 우리들은 노래를 입에 달고 살았었다.
이럴 때 우리 모두 단합하며, 함께 부를 수 있는 산악 반가의 필요성을 느끼곤 했었다.
짙은 녹음이 우거진 7월에 아주 쾌청한 날이었었다.
음악실 창밖에 가는 실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복받쳐 오르고 심장이 더워지는 것 같았었다.
419데모 다음날부터 휴교령이 내려져서, 학교에 나와 자습을 하다가 문득 교무실로 내려가서,
강 대만선생님께 산악반 반가를 만들어 달라고 떼를 쓰다시피 했었다.
강 대만선생님께서 자신은 실력도 없고 능력도 부족하다고 단호히 거절하셨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또 다시 찾아가 뵙고 “우리 산악반원들은 깊은 산골짝에서, 위험한 바위 위에서
지도교사도 없이, 우리들 스스로 합심 단결하고, 서로 도우며 위계질서를 철저히 지켜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면서, 호연지기를 키우며, 학교위상을 높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산행을 위한 단체행동과 공동체 의식과 양정산악반원으로서 양정의 자긍심을 갖고
탈선하지 않기 위해선 다 같이 합심해서 함께 부를 수 있는 산악반가가 꼭 필요하니까
꼭 지어주셔야 됩니다.” 고 강하고 간곡하게 말씀드렸었다.
강 대만 선생님께서 “내 능력에 훌륭한 산악반가가 안 나올 텐데----, ” 하시면서
최선을 다해 지어 주시겠다고 어렵게 승낙해 주셨다.
그동안 잠간 잊고 있었다,
오늘 부름을 받고 이렇게 완성된 산악반가를 다 같이 배울 수 있게 되니,
정상을 정복했을 때보다도 더 큰 성취감을 가슴으로 뿌듯이 느껴지는 것 같다.
음악실로 노 명 선생님과 강 대만선생님이 웃으며 들어오신다.
강 대만선생님께서 너희들 산악반가가 완성되었다.
악보들 다 받았지??
후렴포함해서 3절로 되여 있는데 오늘부터 금요일까지 5일간 점심시간에 배우도록 할 테니까
열심히 배워서 언제 어디를 가서던지 합심해서 힘차게 부르면서
양정과 양정산악정신을 키우도록 하라고 독려해 주셨다.
우선 강대만 선생님께서 피아노 반주로 음을 귀로 익히라고 3절까지 쳐주시면서 직접 불러 주셨다.
다음에 노 명 선생님께서 한 소절 불러주시면 따라 부르고 또 한 소절 불러 주시면 우리들은 따라 부르고,
점심시간이 금방 끝나버렸다. 우리들은 --구름위에 우뚝 솟은 험한 봉우리--- 음을 부르기는커녕
가사도 한소절도 제대로 외우지도 못했다.
다음날 점심시간에 일찍 모두 모였으나 모두들 음치들만 모였나 보다.
선생님들이 열심히 가르쳐 주셨지만 음이 연결이 안 되였다.
수요일은 방 진록 선생님도 합세하여 열심히 지도해 주셨으며 어느 정도 전체적인
윤곽이랄까 틀이 잡혀 가는 것 같았었다.
4일째 되는 목요일, 선생님들과 우리들은 처음부터 반반씩 갈라져서 2소절씩, 혹은 4소절씩
따라 부르기 도하고, 이어 부르기 도하고, 엇갈려 부르기 도하면서 목청이 차츰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닷새째 되는 금요일은 자신이 붙어서 1,2,3절을 연속해서 좔좔 잘 불렀습니다.
최대의 큰 목소리로 띨 때 띠고, 힘 줄때 힘주고, 힘차게 불렀습니다. 혼자서도 부를 정도가 되었습니다.
강대만 선생님과 노 명 선생님께서 수고들 했다고, 이제부터 산에 가서 산악 반가를
힘차게 높게 부르면서 호연지기를 쌓고, 단체 산행에서 협동과 단합으로 산행을 잘하라고 덕담을 해 주셨다.
우리는 전체가 기립하여 “선생님 감사합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그래서 1960.7.4일이 양정산악반가 인쇄 공표된 날이고,
1960. 7. 8일(금)이 레코드 노래판으로 나오진 않았으나 노래가 완성되어 불러졌으며,
1960. 9월호 월계수 신문에 실려 세상에 공식적으로 발표 되였습니다.
삼가 고 강대만 선생님과 고 노명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동안 선생님께 한번도 사은회도 못하고 감사한 마음도 표하지 못했던 것을 사죄드리며,
지면을 통해서 감사한 마음을 표합니다.
우리 산악 반가를 CD로 만들어 보고 싶어서 스트디오에서 녹음도 해보고,
MP3로 만들어도 보고 했으나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금년 양음회(양정 OB 밴드부) 시무식에 가서 연주도 해 보았는데 아직 녹음 진행이 여의치 않습니다.
언젠가는 우리 산악회원들이 합창하여 부르는 음원으로 CD를 만들어 보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회원 50여명밖에 안되는 일개 고등학교 산악 반에 50년 전부터 산악반가를 자체로 갖고 있었으며,
50년을 이어오는 우리 양정 산악반가는 그 자체가 자존심이며 상징입니다.)
(애석하게도 1960년 9월호 월계수와 다른 달 수십 장이 양정고등학교 지하실에 보관 중에
습기에 녹아 붙어서 아깝게 떡이 되어 한 장씩 뗄 수가 없게 되었다 합니다.-원본을 찾을 길이 없을 까요??)
(제가 중2때 강 대만 담임선생님 댁에 갔을 때 직접 피아노를 치시면서 작사 작곡하시는 것을 보고 알았었으며,
양정 70주년 기념식 때 사용한 음원이 강 대만선생님이 직접 작곡, 작사하여 사용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2010. 8. 10.
44회 박 민원 글 씀
1960년 7월 4일 월요일 1교시가 끝난 후
중학교 2학년 꼬마가 교실 문을 열고서 “박 민원 형님 선생님이 오시래요.” 하며 소리친다.
장난꾸러기 반 친구들이 선생님이 누군데??? 하니까 “강 대만선생님 요.” 한다. “너 교단에 올라와서 노래 불러ㅎㅎㅎ--
안 부르면 못가ㅎㅎㅎ---너 누나 있어---!!!! ㅎㅎㅎㅎㅎㅎ”놀리고 난리다.
나는 너무 흥분돼서 한숨에 교무실로 내려갔다.
강 대만 선생님과 심 조택 선생님이 반갑게 맞으며 누런 갱지에 가리방으로 등사한
양정산악반가 악보를 주시면서 “산악반가가 드디어 다 완성이 됐다. 축하한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너무나 좋아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며 절을 5-6번은 했을 것이다.
강 대만 선생님께서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고등학교 음악실에서 점심때 산악반가를 가르칠 테니까,
점심 일찍 먹고 산악반 애들 전원을 음악실로 집합시키고 악보를 나눠 주라고 하신다.
즉시 중, 고등학교 각 학년별 반장들에게 통보하여 점심시간에 음악실에 다 모였다. 약 4-50명 정도 모였었다.
195X년 당시 선인, 만장, 우이암, 오봉, 인수하고 하산할 때 자일이나 텐트등 하루 살림살이를 등에 지고,
도봉이나 우이동에서 버스를 못타고, 버스비로 건빵과 사탕을 사 먹으면서 거의 매번 미아리 까지 걸어 나왔었다.
(30분에 1대오는 버스는 휴일 일반 등산객으로 만원이기 때문. )
석식 후, 캠프화이어 할 때, 하산 후서부터 미아리 까지 걸어서 나올 동안, 우리들은 노래를 입에 달고 살았었다.
이럴 때 우리 모두 단합하며, 함께 부를 수 있는 산악 반가의 필요성을 느끼곤 했었다.
짙은 녹음이 우거진 7월에 아주 쾌청한 날이었었다.
음악실 창밖에 가는 실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복받쳐 오르고 심장이 더워지는 것 같았었다.
419데모 다음날부터 휴교령이 내려져서, 학교에 나와 자습을 하다가 문득 교무실로 내려가서,
강 대만선생님께 산악반 반가를 만들어 달라고 떼를 쓰다시피 했었다.
강 대만선생님께서 자신은 실력도 없고 능력도 부족하다고 단호히 거절하셨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또 다시 찾아가 뵙고 “우리 산악반원들은 깊은 산골짝에서, 위험한 바위 위에서
지도교사도 없이, 우리들 스스로 합심 단결하고, 서로 도우며 위계질서를 철저히 지켜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면서, 호연지기를 키우며, 학교위상을 높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산행을 위한 단체행동과 공동체 의식과 양정산악반원으로서 양정의 자긍심을 갖고
탈선하지 않기 위해선 다 같이 합심해서 함께 부를 수 있는 산악반가가 꼭 필요하니까
꼭 지어주셔야 됩니다.” 고 강하고 간곡하게 말씀드렸었다.
강 대만 선생님께서 “내 능력에 훌륭한 산악반가가 안 나올 텐데----, ” 하시면서
최선을 다해 지어 주시겠다고 어렵게 승낙해 주셨다.
그동안 잠간 잊고 있었다,
오늘 부름을 받고 이렇게 완성된 산악반가를 다 같이 배울 수 있게 되니,
정상을 정복했을 때보다도 더 큰 성취감을 가슴으로 뿌듯이 느껴지는 것 같다.
음악실로 노 명 선생님과 강 대만선생님이 웃으며 들어오신다.
강 대만선생님께서 너희들 산악반가가 완성되었다.
악보들 다 받았지??
후렴포함해서 3절로 되여 있는데 오늘부터 금요일까지 5일간 점심시간에 배우도록 할 테니까
열심히 배워서 언제 어디를 가서던지 합심해서 힘차게 부르면서
양정과 양정산악정신을 키우도록 하라고 독려해 주셨다.
우선 강대만 선생님께서 피아노 반주로 음을 귀로 익히라고 3절까지 쳐주시면서 직접 불러 주셨다.
다음에 노 명 선생님께서 한 소절 불러주시면 따라 부르고 또 한 소절 불러 주시면 우리들은 따라 부르고,
점심시간이 금방 끝나버렸다. 우리들은 --구름위에 우뚝 솟은 험한 봉우리--- 음을 부르기는커녕
가사도 한소절도 제대로 외우지도 못했다.
다음날 점심시간에 일찍 모두 모였으나 모두들 음치들만 모였나 보다.
선생님들이 열심히 가르쳐 주셨지만 음이 연결이 안 되였다.
수요일은 방 진록 선생님도 합세하여 열심히 지도해 주셨으며 어느 정도 전체적인
윤곽이랄까 틀이 잡혀 가는 것 같았었다.
4일째 되는 목요일, 선생님들과 우리들은 처음부터 반반씩 갈라져서 2소절씩, 혹은 4소절씩
따라 부르기 도하고, 이어 부르기 도하고, 엇갈려 부르기 도하면서 목청이 차츰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닷새째 되는 금요일은 자신이 붙어서 1,2,3절을 연속해서 좔좔 잘 불렀습니다.
최대의 큰 목소리로 띨 때 띠고, 힘 줄때 힘주고, 힘차게 불렀습니다. 혼자서도 부를 정도가 되었습니다.
강대만 선생님과 노 명 선생님께서 수고들 했다고, 이제부터 산에 가서 산악 반가를
힘차게 높게 부르면서 호연지기를 쌓고, 단체 산행에서 협동과 단합으로 산행을 잘하라고 덕담을 해 주셨다.
우리는 전체가 기립하여 “선생님 감사합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그래서 1960.7.4일이 양정산악반가 인쇄 공표된 날이고,
1960. 7. 8일(금)이 레코드 노래판으로 나오진 않았으나 노래가 완성되어 불러졌으며,
1960. 9월호 월계수 신문에 실려 세상에 공식적으로 발표 되였습니다.
삼가 고 강대만 선생님과 고 노명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동안 선생님께 한번도 사은회도 못하고 감사한 마음도 표하지 못했던 것을 사죄드리며,
지면을 통해서 감사한 마음을 표합니다.
우리 산악 반가를 CD로 만들어 보고 싶어서 스트디오에서 녹음도 해보고,
MP3로 만들어도 보고 했으나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금년 양음회(양정 OB 밴드부) 시무식에 가서 연주도 해 보았는데 아직 녹음 진행이 여의치 않습니다.
언젠가는 우리 산악회원들이 합창하여 부르는 음원으로 CD를 만들어 보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회원 50여명밖에 안되는 일개 고등학교 산악 반에 50년 전부터 산악반가를 자체로 갖고 있었으며,
50년을 이어오는 우리 양정 산악반가는 그 자체가 자존심이며 상징입니다.)
(애석하게도 1960년 9월호 월계수와 다른 달 수십 장이 양정고등학교 지하실에 보관 중에
습기에 녹아 붙어서 아깝게 떡이 되어 한 장씩 뗄 수가 없게 되었다 합니다.-원본을 찾을 길이 없을 까요??)
(제가 중2때 강 대만 담임선생님 댁에 갔을 때 직접 피아노를 치시면서 작사 작곡하시는 것을 보고 알았었으며,
양정 70주년 기념식 때 사용한 음원이 강 대만선생님이 직접 작곡, 작사하여 사용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2010. 8. 10.
44회 박 민원 글 씀
읽은 이의 가슴을 벅차게 만듭니다.
한줄 한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그 당시의 까까머리 아이로 돌아간 듯합니다.
이젠 양정산악반가가 세상에 나오던 날을 우리 모두 잊지 않고
자랑스럽게 더욱더 양정산악반가를 외쳐볼 수 있겠습니다.
아쉬운 것은 아직까지 좀 더 정확한 음원을 CD에 담아 후배들에게 전하질 못하고
입에서 입으로 전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70주년 행사를 위해 민원형님과 열의를 다해 연주곡 합창곡을 만들다 시간 압박으로 멈춘 일이 생각나는군요.
(자료실 128번 글 참조 : 현재 부르는 곡과 다소 상이 함)
언젠가 누군가는 연주곡, 합창곡을 만들어 후배에게 전할 수 있는 날이 오겠죠.
민원형님 감사합니다.
화이팅 !!!!